관리 메뉴

책세상 블로그

출퇴근을 누워서 할 수 있다면? 《자동차, 시대의 풍경이 되다》 본문

책세상 이야기/편집자 분투기

출퇴근을 누워서 할 수 있다면? 《자동차, 시대의 풍경이 되다》

책세상 2016.05.13 15:54


자동차, 시대의 풍경이 되다

이문석 지음 | 책세상



서울의 무시무시한 집값 때문에 경기도에서 두 시간 가까운 길을 매일 오가는 이가 어찌 나 하나뿐이랴. 여태 가까운 학교와 직장에 다닌 복을 뒤늦게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종점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게 그나마 남은 복인지, 출퇴근길을 온전히 앉아갈 수 있어 다행이다. 어쨌든 하루에 세 시간은 온전히 차에서 지내고 있다. 매일 세 시간, 적지 않은 시간이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마스카라를 그리는 옆자리 여자를 보면서 감탄하거나 프로야구 중계를 보거나 음악을 듣다가 잠이 들어도 시간이 남는다.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동차, 시대의 풍경이 되다>의 저자 이문석은 이제 곧 무인자율자동차가 상용화되어 사람들이 ‘운전’이라는 노동에서 해방(?)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한다. 이동수단으로서 자동차의 역할은 점점 기능으로 퇴화할 것이며 이용하는 승객의 이동시간을 보다 안락하고 유익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자동차 디자인이 진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저자의 예상대로라면, 곧 의자 대신 침대에 누워서 영화를 보면서 출퇴근할 수 있는 버스가 등장할 수도 있겠다.





기능과 목적이 달라지면 디자인은 변화한다. 그리고 그 기능과 목적은 기술의 발달, 사람들의 인식과 문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즉 ‘시대정신이 디자인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종의 포드에서부터 제네시스까지 우리 거리를 지배했던 자동차를 통해 이를 증명한다. 고종이 처음 어가(御駕)로 포드를 들여왔을 때는 아스팔트는커녕 주유소도, 정비소도 없었다. 당시의 자동차는 자전거 바퀴를 개량한 타이어와 서양 마차를 개량한 차체가 합쳐진 것이었으니 마차에 가까웠다고 보는 게 더 합당할지 모른다. 실제로 고종은 앞뒤로 기마병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어차를 몰았다고 한다.


전쟁 이후 군용 드럼통을 이어붙여 차체를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시발’, 미군이 버리고 간 트럭이나 지프로 만든 재생버스, 개발독재와 공업국의 꿈이 현실화되던 시기 등장한 포니, 마이카 시대를 이끌었던 프레스토·르망·프라이드 소형차 3총사,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외제차의 증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이들을 타깃으로 한 국산 대형차 에쿠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발맞춘 RV차량의 성장, 최근 에쿠스의 최고급 국산 자동차의 자리를 이어받은 제네시스까지 대한민국 100년의 모습을 자동차 디자인을 통해 바라본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눈은 미래로 옮아간다. 앞으로 어떤 자동차가 우리 거리를 채우게 될까?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시발' ⓒ서울역사박물관



흑백사진을 분류하면서 만났던 과거 우리의 정겹지만 힘들었던 모습을 그대로, 미래의 어느 날 버스를 타면서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영화를 보면서 말이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모자란 잠을 벌충하는 이 시대 ‘을’들을 위해 빨리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



박병규 책세상 기획편집4팀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