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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치유에 관하여 《트라우마여, 안녕》

책세상 2016.05.24 17:44

트라우마여, 안녕

로렌스 곤잘레스 지음 | 한진영 옮김


《생존 :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법칙》에서 비행기 추락사고, 9.11테러 등 각종 사고 생존자들의 체험담을 소개하고 이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비결을 치밀하게 고찰한 작가 로렌스 곤잘레스. 그는 후속편인 이 책에서 생존자들이 사고 후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용기를 내어 새로운 삶에 적응해나갔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곤잘레스는 트라우마가 심할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변화를 도모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이 책에 소개한 생존자들이 사고 이후의 삶에 적응할 수 있었던 요인들을 차근차근 규명해나간다.


이 책의 초고를 읽은 것은 지난겨울. 악어와 상어, 곰에 물리거나 바다 또는 산에서 조난한 이들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기까지, 그 끔찍하고 긴박한 상황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린 탓일까. 난방이 잘되어 따뜻한 사무실에 있음에도 읽어나가는 내내 소름이 돋고 몸서리가 쳐졌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환각과 플래시백, 악몽 등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암울한 시기를 보내는 부분을 접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세월호 침몰 참사 같은 역대 대형사고 생존자들 이야기가 떠올랐다. 운 좋게 살아남았음에도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겪으며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고통받고 있다는 기사들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책 속 생존자들이 아픔을 딛고 새로운 삶을 구축해감으로써 트라우마에서 차츰차츰 벗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아무리 큰 시련을 겪었다 해도 행복을 되찾을 수 있구나 싶어 내 마음까지 치유되는 기분을 느꼈다.



이 책은 인터뷰를 토대로 생존자들의 처절한 경험담을 생생하게 묘사할 뿐만 아니라 트라우마와 관련된 몸의 반응과 뇌의 작동에 관한 지식을 충실히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신경과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과학적 근거를 탄탄히 했고, 인간의 적응에 관한 연구 중 역사상 가장 오랜 프로젝트인 하버드 대학의 ‘성인 발달 연구’ 결과 등을 토대로 설득력을 더했다. 생존자들에게서 힘든 기억을,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게 하는 인터뷰어로서의 저력, 심리학·신경과학 분야의 최신 연구 결과를 두루 조사하고 종합하여 논거로서 활용하는 성실성이 저자 로렌스 곤잘레스의 남다른 미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뜨개질과 골프, 외국어 공부가 왜 트라우마 치유에 효과적인지 신경과학의 연구를 토대로 고찰해나가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치명적인 사고에 맞닥뜨리기까지의 극적인 과정, 생존 이후 지옥 같은 터널을 지나 삶의 희망을 되찾기까지의 역경을 짜릿하고도 감동적으로 그리는 부분에서는 탁월한 문학적 필치도 돋보였다.




이 책의 편집을 진행하면서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가 각종 대형사고, 특히 비행기 사고 이야기에 한동안 빠져 지냈다. 비행기 사고는 대개 ‘전원 사망’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는데, 기적적으로 생존한 사람들이 드물게 존재한다(이 책의 3장에도 경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은 로렌 엘더 이야기가 짤막하게 소개된다). 1985년 8월 12일에 일어난 일본항공(JAL) 123편 추락사고는 단일 항공기 사고 사상 최악의 사고로, 520명이 사망하고 단 4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 생존자들은 과잉된 취재 열기에 시달린 탓에 트라우마가 더욱 악화되어 오랜 세월 언론과의 접촉을 거부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2000년에야 공개되었다는, 추락 직전에 기록된 블랙박스 음성을 유튜브를 통해 들어보았는데, 기장과 부기장, 기관사의 치열한 사투와 마지막의 충돌 폭발음이 너무나 생생하여 소름이 끼쳤고, 앞으로 비행기를 탈 때마다 떠오를 것만 같았다.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펜타그램, 2015)는 정신과 의사인 저자 노다 마사아키가 JAL 123편 추락사고 및 수학여행 중이던 학생들이 희생된 상하이 열차 사고의 유족들을 인터뷰하고 상담한 결과를 토대로 한 책으로, 대형사고 유족들의 슬픔과 그 치유 과정을 절절하게 담아내어 감동을 주었다. 《트라우마여, 안녕》의 6장에도 다섯 살짜리 딸을 갑작스럽게 잃고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뜨개질을 통해 “생명을 구한” 앤 후드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도 함께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한편, 예전부터 홀로코스트에 관심을 가져왔던 나로서는 청소년기에 나치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가 기지를 발휘해 살아 돌아온 레온 벨리츠카르 웰스(13장)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수용소에서 엘리트 집단에 속하게 된 그는 수감자 시체들을 처리하는 등 나치가 저지른 만행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작업에 동원되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시체 처리반 ‘존더코만도’ 이야기를 담은 영화 〈사울의 아들〉을 보는 내내, 웰스도 비슷한 경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영화 '사울의 아들' 스틸컷


다행히도 웰스는 영화 주인공 사울과는 달리 살아남아 공학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로 일하면서 강연 활동도 활발히 벌이는 등,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유용한 인간으로 거듭났다. 이 부분을 읽고 홀로코스트 생존자 이야기에 관심이 생긴 독자라면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돌베개, 2007), 테렌스 데 프레의 《생존자》(서해문집, 2010), 빅토르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청아출판사, 2005),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책세상, 2012) 같은 책들을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생존 이후의 삶에 잘 적응해나간 사람들을 지켜본 저자는 이들의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한편, 여러 활동에 착수하고 몰두하는 결단력과 실천 능력, 그리고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함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들은 체계가 잡힌 삶을 일구고자 노력했으며, 고통스러운 삶의 순간에도 세상 밖으로 나가 타인을 돕는 일에 나섰다. ‘인간의 진정한 복원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이 책은 아픔을 딛고 삶을 다시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고통의 근원을 성찰하게 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지난 4월 16일, 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이하여 경기도 안산을 찾았다. 그날 경기도미술관에서 개막한 〈사월의 동행-세월호 희생자 추념전〉을 관람하고 나서 합동 분향소로 들어갔다. 한눈에 채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영정 앞을 거닐며 참배하다 보니 너무 많은 이가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섬뜩하게 피부에 와 닿았다. 밖으로 나와서는 벚꽃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화랑 유원지를 산책했다. 사고 당시의 충격에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 생존자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비통해하고 있을 유족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일구어나가길 빌면서...



이단네 책세상 편집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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