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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11월 울은 가을에 어울리는 시, 우가 울에게 본문

책세상 이야기/시로 여는 세상

우는 11월 울은 가을에 어울리는 시, 우가 울에게

책세상 2011.11.28 14:06

Autumn Rain

Autumn Rain



우가 울에게
                                               _ 김혜순


11월에는 잠이 오지 않았고
11월에는 천장의 별이 모두 켜졌고
11월에는 가슴이 환해 눈을 감을 수 없었고
찬 우물이 머리보다 높아 위태로웠고
우와 울은 주먹 쥐고 푸른 바케쓰 속에 누워 있었네
충치 앓는 피아노처럼 둘이 앙다물고 있었네

우는 구름을 덮고, 울은 그림자를 덮었네
우는 바람에 시달리고, 울은 바다에 매달렸네
우는 살냄새다 하고, 울은 물냄새다 했네
우는 햇빛을 싫어하고, 울은 발이 찼네
우는 먹지 않고, 울은 마시지 않았네
밥을 먹는데도 내가 없고, 물을 마시는데도 내가 없었네
우는 산산이고, 울은 조각이고
우는 풍비이고, 울은 박산이고
내 살갗은 겨우 맞춰놓은 직소퍼즐처럼 금이 갔네
우는 옛날에 하고, 울은 간날에 울었네
우는 비누를 먹고, 울은 빨래가 되었네
나는 젖은 빨래 목도리를 토성처럼 둘렀네
우는 얼음의 혀를 가졌고, 울은 얼음의 눈알을 가졌네
나는 얼음을 져 나르느라 어깨가 아팠네

왼쪽 어깨에 우를 오른쪽 어깨에 울을
물지게 가득 짊어진 여자가 나타났네
티베트 깡통을 돌리는 할머니 염불처럼 천당 지옥
천당 지옥 계속 이진법이더니
우 다음에 울을 한 바케쓰 내 살갗 밑에 부었네 갔네

김수영은 김수영영영이고
김춘수는 김춘수수수이고
김종삼은 김종삼삼삼이고
왼발 다음엔 오른발
0 다음엔 1, 2 다음엔 3이고
우 다음엔 울이라고
세상에 가득 찬 수학이 출몰하는 밤
존경하는 시인님들은 아직 죽음의 탯줄에 매달려 계시고

콜리가 멜랑에게
12월이 11월에게

우는 빗줄기를 빗질하고, 울은 빗줄기를 써레질하고
우는 하얀색 운동화를 왼쪽에 신고
울은 하얀색 운동화를 오른쪽에 신고
나는 발잔등에 줄 끊어진 흰새를 두 마리 덮고

그렇게 오도 가도 못했네

*

오늘은 가는 11월 비 내린 아침과 어울리는 시를 한 편 골라보았어요.
우는 11월 울은 11월 가뿐이 보내고
오는 12월 웃는 12월 맞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시인은 '부디 궁핍하시길' 바랐다지요.
궁핍하기 위해 우리 나눕시다.
'우'에게 '산'을.
'우'에게 '정'을.
부디 젖은 몸 젖은 마음들 모두 뽀송뽀송해지기를.

※처방전: 우와 울은 잠과 밥과 친구에 약하다고 합니다.



책세상은 월요일 아침이면 늘 동그랗게 모여 앉아(?) 시를 낭독한답니다. 매주 월요일 <시로 여는 세상>에서 보석 같은 시들로 찾아뵐게요. ^^

_편집부 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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