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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 앞에서 벌거벗은 인간의 초상’ 《이방인》을 다시 만나다

책세상 2013. 10. 30. 10:07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알베르 카뮈. ‘부조리’와 ‘반항’의 작가 카뮈의 전집을 출간한 바 있는 책세상에서는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그의 주요 작품 읽기 강좌를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열었다.

이 강좌는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서재지기이자 서평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로쟈 이현우 님께서 맡아주셨다. 그간 이현우 님의 서평을 즐겨 읽고 다양한 정보를 얻어왔던 터라 직접 그만의 해석을 듣는다는 점에서 기대가 컸다. 10월 매주 수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씩, 카뮈가 29세에 발표한 대표작 《이방인》부터 철학적 에세이 《시지프 신화》, 2차 대전 직후의 최대 화제작 《페스트》까지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 카뮈의 마지막 걸작 《전락》을 읽는 강의만 남겨둔 상태다.

 

이에 앞서 9월 6일에는 서대문구북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카뮈의 작품세계를 간단히 살펴보는 일명 ‘맛보기’ 강연을 연 바 있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았던 무렵부터 시작된 카뮈 강연이 어느덧 완연한 늦가을에 접어든 시기에 마무리를 짓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곧 다가오는 11월 7일은 살아 있었다면 100세 생일을 맞이했을 카뮈가 태어난 바로 그날이다.(구글에서 이를 기념하여 특별한 로고를 만들어주지는 않을까 기대된다!)

이 강좌에는 남녀노소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시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경청해주셨다. 나 또한 오랜만에 학생의 기분으로 돌아가 즐겁고도 뿌듯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가운데는 2002년에 산 한국어판, 왼쪽은 2003년에 생일 선물로 받은 프랑스어판, 오른쪽은 2007년 일본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고야 공항 서점에서 산 일본어판, 아래는 《일러스트 이방인》 리플릿이다. 공통적으로 검정과 빨강을 주조로 한 표지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빨강은 뫼르소를 살인에 이르게 한 작열하는 태양을 상징하는 색일까?


1942년 2차 대전이 한창인, 프랑스가 나치의 지배 아래 있을 무렵 발표되어 알제리 태생의 카뮈를 일약 프랑스 문단의 총아로 부상시킨
《이방인》. 내게 여러모로 감회가 깊은 작품이다. 《이방인》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교 3학년이었던 2002년의 일이다. 1학기 전공과목의 텍스트로 정해지면서 비로소 처음 접하게 된 것인데,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것치고는 꽤나 늦게 읽은 편이다. 명성만 들어오다 마침내 접하게 되어 제대로 읽어내고 말겠다는 의욕이 충만했던 나에게 《이방인》은 첫머리부터 심상치 않았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경백(敬白).’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김화영 옮김(책세상, 2001), 21쪽.

(*내가 당시에 구입한 개정 1판 10쇄의 번역으로 최근의 것과는 다소 다르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일단 몹시 놀라고 이내 비통해하며 불효했던 자신을 자책하는 게 보통 사람들이 기대하는 반응이 아닐까? 그러나 뫼르소는 놀라울 정도로 담담한 데다 더위와 피곤함만을 느낄 뿐, 눈물 한번 흘리지 않는다. 오히려 한가하게도(?) 엄마의 시신이 안치된 방이나 양로원 노인들의 행동거지를 면밀히 관찰하여 집요하게 묘사할 뿐이다. 일찍이 본 적 없는 이런 주인공의 출현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은근히 흥미롭게도 느껴졌다.

장례 이튿날에는 해수욕을 가서 우연히 만난 옛 직장 동료 마리와 함께 코미디 영화를 본 후 집으로 데려오기까지 하는 뫼르소는 육체적 본능과 욕망이 이끄는 대로, 어찌 보면 순진하게 일상을 살아간다. 첫머리에서부터 성인 남자가 ‘어머니’도 아니고 ‘엄마’라고 하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더니만. 당시에는 전통적인 소설의 관습을 깨뜨린 ‘누보로망nouveau roman’(혹은 ‘앙티로망anti-roman’)의 시초적인 요소를 지녔다는 관점에서, 그리고 부조리와 인간 소외라는 키워드에서 이 작품을 해석했던 기억이 난다.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아도 주인공 뫼르소는 여전히 불가해한 면이 많은 인물이었다. 어쩌다 휘말린 일로 아랍인을 개인적인 원한도 없이 ‘태양 때문에’ 죽이다니. 작품상에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과거의 어떤 일로 인해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고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의욕을 잃은 듯한 뫼르소는 그만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보다 생각해볼 여지를 주는 인물이다.

살인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2부에서는 감옥에 갇히면서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일까, 단순하게 살아온 뫼르소가 사형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번민한다. 당시 1부는 중간고사에, 2부는 기말고사에 독해 시험을 보았는데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1부에 비해 어려워진 2부 내용에 난색을 표하며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 뫼르소를 원망(?)하기도 했다. 마침 그때는 한·일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는 때였는데 2부의 심각하고 어두운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째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했고, 얼른 기말고사가 끝나고 축제 분위기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럼에도 《이방인》은 뫼르소가 살인자로서 사형을 선고받으면서 비로소 삶의 의미와 행복을 깨닫는다는, 첫머리만큼이나 인상적인 결말로 내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이후 이 책의 모체가 되었다는 《행복한 죽음》 등 카뮈의 다른 작품들을 일부러 찾아서 읽기도 했고, 지금도 틈틈이 들춰보고 있다. 그리고 올해 초에 《일러스트 이방인》을 처음 펼쳐보았을 때 그 신선한 충격이란! 압도적으로 커다란 판형에 흑백의 강렬한 대조가 돋보이는 일러스트는 총천연색 일러스트보다 더욱 효과적이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다만 뫼르소는 내 애초 상상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고 할까……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이방인〉에서 뫼르소 역을 맡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보다 오히려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 출연한 장 폴 벨몽도가 떠오르는, 잘생겼다고만은 할 수 없는 외모였다. 뫼르소의 외모에 대해서는 딱히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 홍대 근처의 ‘뽈랄라 수집관’(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장난감 수집가 현태준 님의 소장품들을 전시한 공간)에서 발견한 ‘까뮈 카페’의 성냥갑. 카뮈는 카페 이름으로 붙여질 정도로 예부터 한국 독자에게 인기가 많았나 보다.


이번 강연을 들으며 깨달은 것은 이미 아주 익숙하고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여기는 작품도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현우 님은 특히 귀머거리에 문맹이었던 어머니 카뮈와, 독서를 좋아하고 한때 철학 교수를 꿈꾸었으며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던 아들 카뮈의 대조적인 특성과 관계에 주목한다. 카뮈가 태어나고 바로 그 다음 해 남편이 1차 대전에 참전하자마자 바로 전사하는 바람에 혼자 가정부 일로 가난한 살림을 근근이 꾸려나간 어머니, 아들을 사랑하지만 전혀 표현하지 않은 어머니 밑에서 카뮈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을까? 이현우 님은 프란츠 카프카의 문학에서 ‘아버지’의 존재만큼이나 카뮈 문학에서는 ‘어머니’의 존재가 몹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아무리 뛰어난 소설을 써도 어머니는 전혀 읽지 못한다는 현실. 카뮈에게 ‘부조리’는 스스로 생생하게 체험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미처 염두에 두지 않은 카뮈의 개인사에 비추어 작품을 읽으니 뫼르소의 어머니에 대한 태도나 감정 묘사가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이방인》이 발표된 1942년은 2차 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해이지만 작품 속에는 그런 심각한 현실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했다. 겉보기엔 한가로워 보이지만 사회에서 소외되고, 부조리 앞에서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을 날카롭게 그린 이 작품은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사회 제도와 관습에 깊은 회의를 품고 삶과 죽음, 행복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던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문학작품으로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이어 두 번째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이방인》. 일견 평이한 문장으로 서술되어 단순해 보이지만 내용은 그리 간단치 않은,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주는 살아 있는 고전이다.

 

<링크1>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이방인>(1967)

뫼르소가 식당에서 처음 본 후 재판정에서도 발견한 키가 자그마한 ‘자동인형’ 같은 여자, 역시 재판정에서 본 맑은 눈의 젊은 기자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yPg1GbiUlg

<링크2> 영화배우 미카엘 롱스달이 읽어주는 《이방인》 프랑스어 원문.

https://www.youtube.com/watch?v=AEp7hATkECw

 

편집1팀 이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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