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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만의 매력 - 《지금 두 가지 길을 다 갈 수만 있다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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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만의 매력 - 《지금 두 가지 길을 다 갈 수만 있다면》

책세상 2013.11.28 15:56


많은 이들이 단편소설을 장편소설을 쓰기 위한 일종의 ‘연습’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훌륭한 단편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허를 찔린 듯한 여운과 감동을 떠올려보면 이 같은 선입견은 몹시도 부당하다. 아마도 단편만을 ‘종특’으로 하는 작가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문학의 전통에서 훌륭한 단편소설 작가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결코 작지 않다. 멀게는 단편소설의 준거를 확립한 안톤 체호프에서부터 가까이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레이먼드 카버와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가 그렇다(그럼에도 앨리스 먼로가 110년 만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단편 작가라고 하는 것을 보니 스웨덴 한림원조차 비슷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나보다).
 

단편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


 마일리 멜로이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 니콜 크라우스, 이윤 리 등과 함께 영국의 문예지 〈그란타〉가 선정한 ‘미국 문단을 이끌 최고의 젊은 작가’에 선정된 여성 작가다. 멜로이는 이미 두 권의 동화를 포함해 네 권의 장편을 출간하기도 했지만, 최고의 단편소설집에 수여되는 ‘펜/말라무트 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단편 장르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다. 《지금 두 가지 길을 다 갈 수만 있다면》은 마일리 멜로이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고 꼽히는 책으로, 출간되었던 해인 2009년 〈뉴욕 타임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같은 유수의 언론에서 ‘올해의 책’에 선정되는 등 큰 호평을 받았다.


  
《지금 두 가지 길을 다 갈 수만 있다면》에는 어떤 선택에 직면했거나,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이후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 사실을 뼈아프게 자각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투명한 절제의 언어로 그려져 있다. 살면서 우리는 크든 작든 수많은 선택의 순간과 마주한다. 그 선택에 의해 우리 삶은 다채로운 무늬로 직조되고, 때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순간은 잊히고, 선택이 불러온 결과는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진다. 마일리 멜로이는 그 평온하지만 고여 있는 망각의 시간에 작은 돌멩이를 던진다. 그리하여 운명에 체념한 채 살아가는 절름발이 카우보이 청년의 회색빛 삶은 갑자기 찾아온 풋사랑에 잠시잠깐 색채를 띠고(《트래비스 B》), 사랑했던 딸이 왜 끔찍하게 죽임을 당했는지 규명하고자 하는 아버지는 가공할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여자친구》), 신의에 금이 간 부부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위험하고 수상한 커플을 차에 태우고(《오 타넨바움》), 수십 년 전의 사랑을 가슴에 묻어둔 채 은둔하던 노인은 예기치 않게 옛사랑과 조우한다(《아구스틴》).



  
짧았던 순간의 선택은 우리의 삶을 아주 미세한 각도로 틀어놓지만, 시간이 지나고 깨달았을 때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과 아득히 멀어져 있다. 초월적 질서에 대한 믿음과 도덕적 결단에 따라 희생하기를 택하는 고전 비극의 주인공이 아닌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그것이 삶을 뿌리째 흔드는 치명적 선택일이지라도 수수께끼 같은 충동에 의해, 때로는 나약함으로 인해 결말을 알 길 없는 모험에 뛰어들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회한에 잠겨 그 시간을 뒤돌아본다. 그러나 같은 시간으로 되돌아가더라도 다른 선택이란 불가능했으리라는 것, 묘하지만 삶의 진실은 그러하다. 마일리 멜로이는 결코 연민에 치우치지 않고, 때로는 잔인하리만치 담담하게 그 사실을 이야기한다.

편집2팀 김지연
이 글은 출판 격주간지 《기획회의》에 실릴 글을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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