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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2013 책세상 인문학 독서 프로젝트 수강 후기 본문

책세상 책읽기/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강연] 2013 책세상 인문학 독서 프로젝트 수강 후기

책세상 2013.12.19 14:35

책세상은 10월부터 12월까지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과 함께 ‘카뮈-책과 독서의 문화사-니체’로 구성된 [가을 인문학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강의가 끝나면 밤바람 맞으며 걸어내려왔던 독립공원이 기억나네요. 추운 날씨에도 강의실을 찾아주셨던 반가운 얼굴들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강의를 신청하신, 그리고 참석하신 많은 독자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_ _)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니체 철학에 입문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부족하지만 짧게나마 백승영 선생님의 니체 강좌 수강 후기를 적어봅니다.

두둥. 니체의 얼굴만 봐도 떨립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느린 듯 빠른 템포를 유지했던 [2013 책세상 인문학 독서 프로젝트]가 마지막 3강-‘니체, 건강과 긍정의 철학을 기획하다’까지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니체는 문학작품과도 같은 암시와 은유, 파격적 구문들을 즐겨 사용하고 미로와도 같은 중층적 사유를 보여주었기에 독자들이 그 숨은 뜻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철학자입니다. 전통적인 문법을 파괴하고 ‘불온한’ 문장을 구사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문체를 ‘위대한 문체’라고 부르기도 했죠. 문법이라는 관습에서 해방된 언어, 니체의 문체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http://goo.gl/CfmBV6)


  내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기는 어려우리라… 백 년만 기다려보자.
 아마 그때까지는 인간을 탁월하게 이해하는 천재가 나타나서,
니체라는 이를 무덤에서 발굴할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00년을 기다리라고 했던 니체의 방대한 철학을 이번 세 차례의 강의로 전부 이해하기란 어렵겠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혹은 단단한 벽에 조그만 구멍을 낸다는 심정으로…











강사: 백승영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 취득.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에서 니체의 철학을 있는 그대로 정치하게 분석했고
니체전집 중 《바그너의 경우 외》, 《유고》 등을 번역했다.


 “무려 ‘니체’를 배우는데 단 3회 강의라니. 니체에 관해서라면 저는 1년 내내도 강의할 수 있어요!”라고 강의 시작 전에 야무지게 외치신 백승영 선생님. 하핳 그건 니체의 사상이 넓고 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저작 대다수가 ‘불친절’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니체 철학은 오독으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니체의 여동생이 유고를 자의적으로 편집해 출간한 《힘에의 의지》가 나치를 옹호하는 철학으로 해석된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책세상 인문학 독서 프로젝트!


 3차로 나뉘어 진행된 이번 강의 전반에서 강조된 니체 철학의 궁극적인 과제는 ‘위버멘쉬’를 찾는 것입니다. 신은 죽었고, 이제 그 신을 대체할 인간은 ‘위버멘쉬’, 즉 ‘건강’한 인간입니다. 니체가 말하는 ‘건강’이란 “있는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이란 없는” 상태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존재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태입니다. 어렴풋이 머리로는 이해가 가네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할 이유가 있다. 동의하시나요?

  그래서 첫 번째 강의는 왜 니체가 ‘위버멘쉬’를 찾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신의 죽음’이라는 명제에 관한 철학적·종교적 관점에서의 해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세계는 플라톤주의적인 형이상학적 이분법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플라톤주의, 다 아시죠?^^... 저도 분명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두 번 배웠는데... 핳 플라톤주의는 현실과 이데아를 분리해서 이데아가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세계라고 주장하며 현실에 비해 ‘이데아’에 우위의 가치를 준 사상입니다. 

 
니체는 이런 이원론에 대해서 왜 우리가 사는 현실을 부정하느냐!고 비판했죠. 형이상학적 이원론이 서구의 오랜 전통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기존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전복적 사유입니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은 곧 플라톤주의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즉 플라톤주의로 대표되는 형이상학적 이분법, 그리고 여기에 바탕을 둔 형이상학적 초월 세계에 대한 거부인 것이지요. 나아가 니체는 ‘구원’에 대해서도 종교적 ‘구원’과 전혀 다른 생각을 펼칩니다. 구원은 인간의 내면에 있고,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진정한 삶을 사는 인간은 누구나 신의 자식으로서 동등한 자격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니체가 종교를 비판한 것은 세속화된 그리스도교의 미래에 대한 담론이 당대 유럽인들의 화두였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신은 죽었다’는 화두도 당시 유럽에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하네요. 니체의 선언은 그리스도교 비판이자 유럽의 정신적 토대에 대한 비판이었고 사유의 중심을 ‘신’에서 ‘인간’으로 옮기는 작업이었습니다.

 두 번째 강의에서는 니체 철학의 유일한 설명원리, ‘힘에의 의지, Der Wille zur Macht’(이하 WM)를 다루었습니다. 


 “이 세계는 힘에의 의지다. 그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너희 역시 힘에의 의지다. 그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 《유고》

 
강의 노트만으로 이해하기에는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ㅋㅋ 철학적 이원론의 문제를 지적한 니체는 이를 대체할 ‘관계적 일원론’을 내세웠는데 이 모든 것은 객체가 아닌 ‘힘에의 의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유입니다. WM은 니체의 방법적 일원론의 유일한 설명 원리이며 니체가 주장한 긍정철학의 방법 개념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WM의 관계론을 스카프를 들어 설명해주셨어요. 스카프는 날실과 씨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날실을 하나 뽑아낸다고 해서 스카프의 전체 모양은 변하지 않죠. WM은 그런 날실과 씨실입니다. 서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각각이 세계의 중심입니다.

 
‘이데아’를 추구하며 현실을 부정했던 플라톤과 달리 니체는 ‘사람들은 필연이며, 한 조각 숙명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니체는 관계적 일원론을 완성시키고 나서야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을 ‘위버멘쉬’로 만들기 위한 교육

 
인간을 왜곡했기 때문에 디오니소스적 긍정이 필요했으나 인간을, 현실을 왜곡한 것도 인간이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방법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니체는 ‘건강한 인간’들을 육성하려고 시도합니다. 니체의 후기 철학이 교육적 기획 성향을 띠는 이유죠.

 
그래서 마지막 3강은 ‘위버멘쉬’의 개념과 그를 위한 철학적 교육자로서의 니체의 사상을 다루었습니다. ‘위버멘쉬’를 향한 먼 길... ‘진정한 이기심은 진정한 이타심이다’라고 말했던 니체답게 이제는 사람들을 ‘위버멘쉬’로 교육하고자 합니다.



위버멘쉬Übermensch란?
체 철학에서의 건강한 인간의 대명사이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핵심 주제입니다. 위버멘쉬는 ①자신을 극복하고 ②영혼과 육체가 하나의 유기체를 이룬 존재입니다. 여기서도 이성 중심의 형이상학적 인간관을 거부하는 니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위버멘쉬는 또한 ③자유정신이며 창조하려는 의지를 가진 존재여야 합니다. 여기서 창조란 곧 가치 평가입니다. 사물은 인간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가치가 생겨나고 의미가 창조됩니다. 그리고 위버멘쉬는 ④주권성을 가진 ‘주인’입니다. 그래서 내가 정한 규칙에 따라 내가 행동하는 자기지배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게 가장 인상 깊었는데요) ⑤WM의 관계적 실존입니다. 니체는 적이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고 적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진정한 이기심은 진정한 이타심’이라는 말이 나왔죠. 하지만 니체는 두루두루 잘 지내자는 플라톤주의적 공동체가 아닌 극단적 긴장이 지배하는 공동체를 제시합니다. 조직체가 서로 이겨먹으려는 긴장된 상태로 유지되는 힘에의 의지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위버멘쉬는 주권을 가진 개인이며 정신적인 귀족이자 세계의 주인입니다. 남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 나의 발전이 곧 타인의 발전. 나를 사랑하고 긍정하며 타인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위버멘쉬. 니체는 세기말 혼란스러웠던 시대의 질환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철학적 처방으로 위버멘쉬를 제시했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0.1%만이라도 위버멘쉬가 된다면, 오늘날 이 세계의 질병들이 해결될까요?

 강의를 들으면서 정신없이 받아 적고, 그것을 정리하면서 또 한 번 생각하고. 정말 정직하게 ‘공부’한 강연이었습니다. 그래도 장장 21권의 니체전집을 보며 아직 갈 길이 멀었음을 느낍니다- 하핳



 나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그런데도 너희는 이 거대한 밀물을 맞이하여 썰물이 되기를 원하는가?
 
 
― 프리드리히 니체 (1844.10.15~1900.8.25)

영업기획부 박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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