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책세상 블로그

나무의 미덕을 지닌 인간을 꿈꾸다 본문

책세상 이야기/편집자 분투기

나무의 미덕을 지닌 인간을 꿈꾸다

책세상 2014.01.21 15:49

래전 지구 생명 진화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한 편을 우연히 시청한 일이 있다. 수십억 년의 긴 시간이 화면으로 흘러가는 동안 유독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는데, 아직 물에 살던 인간의 먼 조상이 바라봤을 육지의 풍경을 그들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화면이었다. 밝은 빛으로 가득 찬 세상, 푸른 하늘과 흰 구름, 그 사이에서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가지와 반짝이며 살랑대는 수많은 잎들, 수면 위로 떨어진 나뭇잎이 일으킨 작은 파문…. 한 편의 시와도 같은 정경이 화면 속 인간을, 또 화면 밖의 나를 매혹했다. 아직 어두운 물속에서 살고 있던 작고 미약한 생물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을 불러일으킨 존재가 나무였다니 너무나 신선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나무가 인간을 매혹하며 경이와 경외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우리 유전자 깊숙이 새겨진 그때의 그 영상 때문이 아닐까?


숲으로, 숲으로. 걸어들어오시지요.


물론 나무로 대표되는 녹엽식물도 물에서부터 진화했다. 광합성 활동으로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었던 나무의 조상은 서서히 더 많은 햇빛을 찾아 육상으로 이동했고 지구에 수많은 생물종이 개화할 수 있는 생태 환경을 조성했다. 나무는 지구를 생명의 요람으로 탈바꿈 시킨 주인공인 셈이다. 그런데 자연에서 멀어진 삶을 사는 동안 인류는 나무의 존재 가치를 잊기 시작했다. 자연 만물은 우리 삶을 위해 이용 가능한 자원일 뿐이라는 사고가 나무에 대한 무분별한 활용으로 이어지면서 나무는 그들이 만든 세상에서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나무 없는 인간의 삶은 가능한가. 또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사무실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며 얻는 마음의 평화 없이 나는 살 수 있을까?

생태 관련 원고라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에 지루한 논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품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수목인간》을 편집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의 이런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위로 솟아 옆으로 퍼지는’ 나무의 생태에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기 삶을 드높이면서도 타인을 향해 뻗어나가는 자기 초월성을 읽어내는 저자의 성찰에서 나는 나의 오래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연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영향을 미쳐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무가 공존·공생·성숙·포용 등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나는 어떻게 잊고 살아왔던가.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쉬 잊고 지내는 것은 사실 몰랐다고 하는 편이 맞다. 나무의 실용적 유용성이야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우리 정신을 고양시키는 나무의 가치에 대해서는 우리가 너무 무지했다. 이 책을 만드는 시간은 내 폐가 숨 쉬게 하는 산소뿐 아니라 정신의 폐에도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주는 나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편집2팀 김경은 

 



 * 위는 《기획회의》 358호(2013. 12. 20)에 실린 《수목인간》 편집 후기입니다.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