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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기] 잠정적 유토피아? 유토피아는 있다!

책세상 2011. 11. 30. 18:23
뷔리당의 당나귀, 이것이냐 저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_ 당나귀의 양옆에 똑같은 거리를 두고 똑같은 맛과 똑같은 냄새를 가진 풀 더미를
쌓아놓는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 움직여야 하는데, 당나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
고 낑낑 앓다가, 끝까지 아무 선택도 못하고 결국 심한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 죽었다.

우리가 잊고 있는 부동의 사실 하나가 있다. 당나귀도 인간도 그 존재의 본질은 ‘합리적 계산기’가 아니라 ‘행동으로 삶을 펼쳐내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점이야말로 비그포르스[각주:1]가 미국의 프래그머티즘 철학자 존 듀이에게 깊이 영향 받은 부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계산으로 행동의 선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당나귀든 인간이든 삶을 멈추지 않는다. 당나귀는 어느 쪽으로건 움직여서 그야말로 ‘먹고 보자’라는 행동으로 삶을 펼쳐낼 것이다. 당나귀보다 머리가 좀 좋고 식탐은 훨씬 많은 나 같은 인간이라면 ‘둘 다 먹으면 되지 뭐’라고 생각해 이쪽저쪽을 오가며 거침없이 먹어대는 행동으로 삶을 펼쳐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이러한 존재이기 때문에 삶이 가능해진다. 당신은 열여덟이나 열아홉의 나이쯤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을 것이다.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할 나이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때 당신은 이 삶 혹은 저 삶을 선택할 경우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며 어떤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던가. 불확실성과 불안함 때문에 아무 선택도 하지 못하고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던가. 그렇지 않다. 미래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가상의 미래’라는 것을 얼기설기하게라도 엮어놓고 그것을 계획 삼아 삶을 펼쳐왔다. _315쪽

비그포르스가 말하는 유토피아는 보이지도 않는 ‘미래’로부터 날아와 우리 머릿속에 뚝 떨어진 그런 유토피아가 아니라, 철두철미하게 ‘현재’로부터 생겨나고 또 ‘현재’에 발을 딛고 있는 유토피아이다. 따라서 그가 생각하는 미래 또한 현재와 저만치 뚝 떨어져 있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가 머릿속에 그려내 앞으로 투사해보는 ‘가상의 미래’이다. _322쪽

진정한 유토피아는 현재로부터 생겨난다.
비그포르스는 유토피아를 만들어내는 진정한 뿌리가 ‘현존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에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결코 완벽하지 않다. 따라서 매일매일 수많은 모순과 부당함이 우리 눈에 밟히게 되며 그때마다 우리는 불만과 좌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눈을 질끈 감고 피하는 것도 한두 번이고, 개중에는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크나큰 잘못과 모순도 부지기수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늘어나 쌓이고 쌓이면,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된 세상에 대한 강렬한 열망 또한 우리 마음속에 쌓이고 쌓이게 된다. 그 열망이 목까지 차도록 쌓이면 우리의 머릿속에는 우리 눈앞에 현존하는 세계와는 다른, 하지만 지금 우리 눈앞의 세계에 실현될 수 있고 또 실현되었으면 하는 그런 세계의 모습이 떠오르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유토피아이다. ‘현실의 여러 모순들에 대한 좌절 속에서 우리의 머릿속에 구성된 미래’, 이것이 바로 진정한 유토피아인 것이다. _324쪽

우리는 얼마든지 사회를 바꿔나가는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 그렇게 그려낸 사회는 아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유토피아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그런 ‘아무 데도 없는 곳u-topia’은 아니다. _325쪽

ㅡ홍기빈,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책 소개 보러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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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전, 가슴이 뛰었습니다.
'무차별indifferent'한 조건 속에서 무기력해지더라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좌절하더라도, 우리는 '행동으로 삶을 펼쳐내는 존재'로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원하는 '가상의 미래'를 그리고, 삶을 겪은 뒤에는 처음 생각해던 그 가상의 미래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지 진저리가 나도록 깨닫게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삶을 멈추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삶을 계속하죠.
우리가 몇 번의 좌절을 겪었는지 이제 셀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만, 우리가 삶을 계속하는 한, 행동으로 삶을 펼쳐내고 함께 움직이는 한, 우리가 그려낸 사회 '유토피아'는 '유토피아u-topia'가 아니겠지요, 두근.

우리는 몇십 년, 몇백 년 후에나 찾아올 낙원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낙원이란 인류 역사의 시작에도 없었고 마지막에도 없을 것이다.          ㅡ비그포르스
_편집부 쥬

  1. 비그포르스는 1932년부터 17년 동안 재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스웨덴의 정치․경제 모델을 주도적으로 건설한 이론가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대공황기에 세계 최초로 케인스주의적인 대안적 경제 모델을 제시해 1932년 총선거에서 사민당의 승리를 이끌었다. 적극적인 수요창출 정책을 통해 공황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데 핵심 역할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묄레르 등과 더불어 복지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20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사회(민주)주의자”로 불리는 비그포르스의 사상과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이 바로 ‘잠정적 유토피아 provisoriska utopier / provisional utopia’라는 개념이다. 현실의 객관적 상황이나 사람들이 삶 속에서 느끼는 고통과 열망 그리고 이들이 꿈꾸는 세상의 모습에 주목했다. 이를 바탕으로 ‘언젠가 도래할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를 제시하고 이를 혁신적인 정책으로 구체화했다. 그에 따르면 이념과 현실을 바탕으로 유효한 정책을 만들고 그것들이 총체적으로 실현되었을 때의 사회의 모습, 즉 잠정적 유토피아의 비전을 제시해 대중의 마음속에 잠재된 열망을 정치운동으로 폭발시키는 것이 정당의 임무이이다. [본문으로]
2 Comments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flyingsoul.tistory.com BlogIcon 전국제패 2012.01.18 16:09 신고 이벤트 당첨된 이 책. 며칠전에 다 읽었습니다~ 비그포르스의 대단한 점은. 역시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줬다는 거죠. 잠정적 유토피아.. 정말 공감되는 부분인 듯.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이 정치계에 있어야하는데 말이죠... 아직 멀어 보입니다. 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bkworlds.tistory.com BlogIcon 책세상 2012.01.18 16:48 신고 우와, 훌륭하십니다~!!
    오늘 마침 홍기빈 선생님 강연 있으니 오세요.
    다른 댓글에도 썼습니다만,
    저녁 7시 반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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