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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미완성 유고작,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본문

책세상 이야기/편집자 분투기

루소의 미완성 유고작,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책세상 2014.03.19 10:49



말년의 산책,
쓰라린 회한과 달콤한 슬픔, 은은한 즐거움이 어우러지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장 자크 루소 | 책세상



 


 ‘장 자크 루소’ 하면 우선 모리스 캉탱 드 라 투르가 그린 초상화 속의 말쑥한 모습이 떠오른다. 로코코 시대 특유의 동글동글 말린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조금은 뺀질뺀질해 보이기도 하는 묘한 얼굴.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와 ‘백과전서파’에 대한 내용이 나올 때면 늘 볼테르, 디드로 등과 함께 언급되었던 루소, 《사회계약론》 등을 통해 드러낸 급진적인 사상이 훗날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루소에 대해 나는 그저 역사 속의 학식 높고 고고한 인물이겠거니 하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대학교 2학년 1학기 때 루소의 《고백》(책세상에서 올해 상반기에 출간될 예정이다)을 수업 텍스트로 읽으면서 내 고정관념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모리스 캉탱 드 라 투르가 그린 루소의 초상.
루소는 이 그림이 자신의 모습과 가장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어머니를 여의고 모성애가 결핍된 상태로 자라난 소년 시절에 이어, 얼마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낱낱이 서술한 이 《고백》에서 루소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내보인다. 하인으로 일할 때 리본을 훔쳐놓고 거짓말을 하여 하녀 마리옹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거나, 목사의 여동생에게서 체벌을 받으면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는 이야기, 여성에 대한 편력 등 밝히기 부끄러운 일들까지도 노출증이 의심될 정도로 가감 없이 써내려간 《고백》. 이 책을 읽고 나니 역사 속의 위대한 사상가라고만 여겼던 루소가 보다 인간적이고 입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왔고, 복잡다단한 인간의 심연을 구현한 인물을 보는 듯해 흥미가 일었다. 한편, 자신이 쓴 이 글을 절대로 없애지 말라고 간청하는 서두를 비롯해 책 곳곳에서 피해망상증에 시달리는 루소의 어두운 내면이 들여다보였다. 당시 함께 수업을 듣던 친구들과 《고백》을 읽어나가며 “정말이지 루소는 정신이 이상한 것 같아. 얼마나 박해를 받았으면, 가엾게도……”라는 말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에밀》, 《사회계약론》 등을 통해 절대왕정과 기독교를 위협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 탓에 저작 출판을 금지당하고 쫓겨 다녔던 루소는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은 나머지 신경증을 앓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고백》을 계기로 루소에 관심이 생긴 나는 뭔가 낭만적이고 멋져 보이는 제목에 이끌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찾아보았는데, 당시에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말년에 이른 루소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이 반복되다 보니 기가 질려서 중간에 덮어버린 게 아닐까 싶다. 그 이후로 십 년이 흘러서야 루소전집 4권으로 나온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완독하게 되었다. 스스로 일갈했듯 “자연으로 돌아”간 루소의 모습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부터 집필하기 시작해 죽음으로 인해 결국 미완으로 남은 유고작이다.
 읽고 난 감상은…… 여전히 피해망상, 추적망상의 징후가 도입부부터 엿보이긴 하지만 말년에 이르러 마음을 비우고 가까스로 평안을 찾은 모습에서 내 마음마저 치유되는 듯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회상하면서도 자연과 벗하며 산책을 함으로써 위안을 얻는 루소에게서 묘한 연민의 정도 느껴졌다. 이 책의 도입부에서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이 세상에 나는 혼자다.
더 이상 형제도, 가까운 사람도, 친구도, 사람들과의 교제도 없고, 오직 나 자신뿐이다.
가장 사교적이고 상냥한 사람이 만장일치로 추방된 것이다.”

 강렬하고도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말이지만, 사실상 이 정도로 가혹한 상황이었는지 의문스럽기도 했다. 책을 읽다 보면 루소 곁에는 늘 아내 테레즈 르바쇠르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지인들과 교유하는 이야기도 종종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말은 약간 엄살(?)처럼 과장처럼 보인다. 어쨌든 우울한 어조로 시작하지만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즐기기 위해서 썼다는 이 책에서 루소는 회한과 슬픔, 기쁨과 즐거움을 자유롭게 오가며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식물을 채집하며 산책하는 루소.
말년의 루소는 식물을 채집하고 연구하는 데 전문가 못지않은 열정을 드러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루소의 식물 사랑에 관한 대목이다. 숲 속에서 산책하며 식물을 채집하고 연구하는 루소의 이야기에서 전문가 못지않은 조예와 열정이 느껴졌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나무나 풀, 꽃에 대해 과문한 나에게도 식물에 대해 찬찬히 알아가고픈 마음을 일으킬 정도이다. 도시 속의 번잡한 삶에 환멸을 느낀 이들이 은퇴한 후에 전원생활을 하길 꿈꾸는 것도 루소의 심정과 맥을 같이하는 것은 아닐까.

 

 이 대목을 읽으며 엉뚱하게도 문득 떠오른 것은 이상의 〈권태〉라는 수필이었다. 이 수필에서 20대의 혈기방장한 이상은 오히려 온통 초록색 일색인 여름의 시골 풍경에서 권태를 느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었는데, 자연에게서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는 루소와 얼마나 대조적인지! 문명 속에서, 자신을 오해하는 사람들 속에서 괴로워했던 루소는 자연의 품에 안겨서야 치유를 받았고, 몽상과 명상을 통해 영혼의 평화를 얻었다. 이렇듯 같은 자연을 바라보더라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제각기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루소의 죽음으로 이 책은 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후원자이자 어머니, 연인 격인 바랑 부인에 대해 회상하는 ‘열 번째 산책’에서 갑작스럽게 끝이 난다. 아쉬운 부분이지만 루소는 이미 《고백》 등 자서전 격의 작품에서 자신의 삶 이야기를 수차례 밝혀온 바 있다. 세간의 오해에 맞서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까지 당당하게 드러낸 루소. 그가 세상에 태어난 지 30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이렇게 번역된 그의 저작들을 읽고 그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으니 그의 바람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게 아닌가 싶다.

편집1팀 이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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