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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했던 '컬트'와 진짜 '컬트' 사이

책세상 2014.04.08 11:18


 크게 배워야 하는 대학(大學) 시절에 나는 (누구나 그렇듯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딴 짓에 열심이었다. 갓 입학했을 때에는 학교에 안 가고 집 안에 틀어박혀 영화만 밤새도록 보곤 했는데, 특히 그때는 취향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시절이라 다양한 작품을 보았다. 알폰소 쿠아론의 <이 투 마마>,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플라이>, 마르크 카로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등…


 짐 셔먼의 <록키 호러 픽처 쇼>도 그때 본 영화 중 하나였다. 그 영화는 나에게 ‘컬트’에 관한 하나의 견고한 기준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영화를 추천해준 것은 영화에 관한 취향만은 나와 쌍둥이 같았던 동아리 선배였는데, 컬트영화라면 단연 ‘이것’이라며 이 영화를 내게 내밀었다. 거침없고 과감한 시각적, 청각적 표현의 향연. 그리고 나는 자연스레 ‘아, 이런 것이 컬트로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컬트는 굉장히 중독성이 있는 장르라 이후 비슷한 느낌의 작품을 주기적으로 보기도 했다.

 
그 선배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 후 수년이 흐르고, 나는 미셸 리오의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원고를 접하면서 ‘컬트 소설’이라는 장르를 새로이 알게 되었다. 간혹 영화 분야에서의 의미와 비슷하게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개 문학에서의 ‘컬트’는 그 의미가 약간 달랐다. 한 예로 미국 《텔레그래프》 지에서 최근 200년간 출간된 책들 중 최고의 컬트 소설을 꼽았는데 그 목록에는 카뮈의 《이방인》,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목록을 보면 컬트에 대한 기준이 조금씩 와해되기 시작한다.

 문화 분야에서 컬트란 ‘한 가지로 정의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형식적 규범이나 스타일이 존재하지 않는 장르를 넓게 ‘컬트’라고 칭한다. 컬트영화는 그 큰 줄기 아래에서 폭력과 섹스를 사회적 금기나 제도적 검열에 대항하는 힘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택했고, 컬트 문학에서는 본래의 의미가 유지되고 있다. 엔하위키 미러에서 컬트를 ‘대중적이지 않으면서 소수의 열광적인 참여계층을 가진 문화콘텐츠’라고 정의했는데 그것 역시 큰 범위 안에서는 맞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것도 컬트, 저런 것도 컬트

 미셸 리오는 평론가들로부터 ‘분류 불가’ 판정을 받은, 그만큼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가진 작가이다. 8년이나 대학을 다니며 언어학, 문학, 기호학 등을 공부했고, 스스로 ‘작가란 당대 최고 수준의 지식을 갖춰야 하고 그런 지식으로부터 소설의 영감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 그는 소설을 진리를 해명할 ‘절대 자유의 공간’으로 사용한다. 미셸 리오의 세 중편에서 박학다식한 인물들의 ‘아어이다’를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왜 그의 작품들이 분류 불가 판정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눈에 띄고 자극적인 것을 좇다 보면 자연스레 본래의 목적과 뜻을 잊게 되기도 한다. 컬트영화의 자극적 표현들에 익숙해져, ‘컬트’ 자체에 관한 인식은 간데없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게다가 ‘컬트’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모호한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어 누구나 그 개념에 숟가락을 얹을 수 있기에 더 만만하기도 하다. 오늘은 컬트의 넓은 맥락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불확정성의 원리》를 펴보아야겠다.



영업기획부 박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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