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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편집 후기 본문

책세상 이야기/편집자 분투기

걷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편집 후기

책세상 2014.05.08 18:00

[인문]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저자 : 프레데리크 그로

출판사 : 책세상
옮긴이 : 이재형
쪽수 : 320쪽
발행일 : 2014년 4월 20일
 





 이 의 원고를 처음 접한 때는 몸도 마음도 아직 겨울에 머물러 있는 2월 하순경이었다. 예년보다 그리 춥지 않은 데다 눈도 많이 오지 않은 편이었던(물론 강원도에서는 연일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지만) 지난겨울, 마음만 먹으면 밖으로 나가 오래 걸을 수 있었음에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인지 게으른 탓인지 좀처럼 걷지를 못했다. 그래서인지 겨우내 온몸이 찌뿌듯하고 여기저기 결리는 증상에 시달렸다. 사실 최근 몇 년간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걸어야만 한다는 점을 절감하는 중이었는데, 온종일 앉아서 일하는 편집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마침 ‘걷기, 하나의 철학Marcher, une philosophie’이라는 원제가 붙은 원고를 읽고, 기운생동하는 봄을 맞이하여 걷고 또 걸어보자 하는 의욕이 불끈 샘솟았다. 이 책의 제목과 기본 사양을 고민할 무렵 오랜만에 집 근처의 공원을 걸었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면서 머릿속이 맑게 개는 듯한 쾌감과 충일감을 모처럼 맛보았다. 아울러 ‘걷기’를 하나의 철학적 행위라고 보는 이 책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특별히 기승전결이 있다기보다 ‘걷기’ 하면 떠오르는 상념이나 인물 등에 대해 분량이나 형식에 구애됨 없이 자유롭게 써내려간 이 책은 총 27개의 꼭지로 구성되었는데, 내용상 크게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었다.
첫째, 걸으며 사색하며 얻은 통찰력과 감수성, 영감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사상과 작품 세계를 형성해나간 인물들의 이야기다. 걷기를 통해 세상 보는 눈을 키운 니체, 칸트, 루소, 소로 등 사상가들뿐만 아니라 랭보, 네르발, 워즈워스, 프루스트, 횔덜린 등 문학가들의 일화가 다채롭게 제시된다.
둘째, 산책, 소요(逍遙), 일주, 탐험, 성지 순례, 정치적 행진 등 걷기가 자연과 문명을 가로지르는 실로 다종다양한 행위를 아우른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부분이다.
셋째, 걷기가 자연에서 얻는 충족감, 신선한 자극, 깨달음, 희열, 고통, 고독, 우울 등 갖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시적이고 감성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대목이다.
 

* (왼쪽부터) 랭보와 칸트.
똑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림체처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사람.
두 사람의 유일한 공통점은 '걷기'였습니다- 

 
 ‘걷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산 인물들 중에서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는 니체였다. 젊은 나이에 문헌학 교수로 일하다 만성적인 두통과 구토 증상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알프스를 6시간이고 10시간이고 걷고 또 걸은 니체. 특히 눈이 아파서 책도 읽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니체가 고통을 잊어버리고자 걸었다는 이야기는 연민의 정과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몇 달간 시력 악화와 안구 질환으로 고생해서인지 니체에게서 동병상련을 느낀 내게 이 책은 ‘자연 속을 걸음으로써 지친 눈을 치유해보자’ 하는 의지를 북돋아주었다.
 
 편집 과정에서는 원서에는 없는 니체, 랭보, 루소, 소로 등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 글을 따로 정리하여 넣었고, 한국 독자에게는 다소 낯설 수도 있는 인물들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각주를 추가하는 작업을 했다. 아울러, 자료 사진이나 그림을 삽입하여 해당 인물이 어떤 공간과 시간 속을 걸었는지 그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전해주고자 했다. 다행히 니체와 루소 전집, 위대한 작가들 시리즈의 랭보와 횔덜린 전기, 고전의 세계 시리즈로 나온 소로의 《산책 외》 등 이 책을 만들면서 참고할 책세상 기출간 도서가 무궁무진했다. 이 책들을 읽어나가면서 관련 인물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하는 호기심도 일곤 했다.

 * 니체가 '차라투스트라'와 '영원회귀'에 대한 영감을 얻었던 알프스 산맥의 질스마리아

                    “우리는 걷기 시작하자마자 즉시 둘이 된다.
                                 심지어 혼자 걸을 때에도 육체와 영혼이 대화를 나눈다.”

 걷기가 사유의 근육을 키워주는 하나의 철학임을 역설하는 이 책에서 특히 인상에 남는 문장이다. 걷기가 우리의 몸과 마음이 활발히 대화하도록 격려하고, 결국에는 둘이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뜻일 것이다. 바깥에서 자연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걷고 보고 느끼고 생각할 것을 끊임없이 권유하는 저자의 일관된 목소리는 건물 안에 갇힌 채 살고 있는 우리들을 밖으로 불러내는 효과를 지닌다. 막상 이 책을 만드는 데 전념하느라 한동안 마음껏 걸어보지 못한 나는 4월 마지막 주말, 하루에 5시간여를 걸으며 오랜만에 걷기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이 책이 발간되고 보도자료를 쓰느라 한창 고뇌할 무렵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고 때문에 비통과 분노, 무력감을 번갈아 느끼며 지내온 나는 이 오랜 걷기로 괴로운 마음을 어느 정도 치유받을 수 있었다. 봄꽃이 더욱 화려하게 만개하고 신록이 우거지는 5월이야말로, ‘걷기’라는 하나의 철학을 실행하기에 좋은 때라는 생각이 든다.

편집1팀 이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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