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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이야기/편집자 분투기

몽테뉴와 함께하는 계절 _《인생의 맛》 편집 후기

책세상 2014.10.15 16:05

 









『인생의 맛』
앙투안 콩파뇽 지음, 장소미 옮김, 책세상, 13,000원

 프랑스에서 출간된 원제가 ‘몽테뉴와 함께하는 여름’이라 마음이 급했다.
 제목에 계절을 나타내는 말이나 특정 날짜가 들어가면 편집자의 마음은 바싹 타들어간다. 적어도 그 전에는 책이 출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원고지 500매가 채 안 되니 좀 수월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일정은 틀어지려고 있는 것이라 했던가. 완전 원고 입고가 늦어졌다. 발을 동동 구르는 내게 번역자 선생님은 이 책이 일정 분량만큼만 진도가 나가는 ‘야속한’ 책인데, 무엇보다 ‘성실성’과 ‘약속’을 중히 여기는 몽테뉴에 관한 책이라 당신도 무척 괴롭다는 마음을 전해왔다.

 원고는 여름이 무르익다 못해 농익을 때가 다 되어 도착했다. 그런데 계약 전에 꽤 꼼꼼하게 들여다본다고 봤는데, 막상 입고된 원고를 읽어보니 여백이 너무 많아 보이는 텍스트였다. 가슴이 덜컹했다. 이 책은 프랑스 국영 라디오 채널 중 하나인 프랑스 앵테르에서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 약 5분간 전파를 탄 방송을 단행본에 맞게 다시 써서 묶은 책이다. 방송 시간이 워낙 짧다 보니 꼭지의 분량도 적을 수밖에 없고, 그 안에 몽테뉴 철학의 핵심이 모두 담기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런데 편집 기획서를 쓰기 위해 천천히 원고를 읽어 나아가는 동안 그런 우려는 눈 녹듯 사라지고 어떤 충만함 같은 것이 마음속에 서서히 차올랐다.

 서문에서 작가가 밝힌바 ‘일정한 틀 없이, 순서에 구애 받지 않고’ 쓴 집필 방식은 몽테뉴가 《수상록》을 쓴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논리가 정연하고 틀이 단단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직선적으로 전달되는 영미권의 글쓰기와 달리 프랑스식 글쓰기는 천천히 산책하듯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툭툭 던져놓는다. 몽테뉴로부터 전해져오는 ‘에세이’ 전통이다(에세이라는 단어도 《수상록》의 프랑스 제목인 ‘에세Essai’에서 연유했다).


 마음이 기꺼이 감응하는 텍스트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일정은 여전히 촉박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편집에 임했다. 좋은 글은 아마도 편집자를 기쁘게 하는 유일한 것이리라. 그사이 제목은 ‘인생의 맛’으로 바뀌었다. 여름 바캉스 기간에 방송된 프로그램 제목을 따 지은 원제를 따라갈 이유가 없었고, 계절에 가둬두기만도 아까웠다. 제목 정하기는 아마 편집 과정 중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눈과 귀에 걸리는 독창성을 지녀야 하면서 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머금고 있어야 한다. 산고의 고통은 있었지만, 안개 속에서 명료하게 떠오른 제목이었다.


 몽테뉴가 600년이라는 시간을 뚫고 여기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것은 그가 바로 삶을 이야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읽은 《수상록》은 겸손하고 명민한 한 남자가 긴 시간 동안 자신과 삶을 관찰하면서 써내려간, 내면과 외면이 행복하게 만난 한 권의 책이었다. 그 점을 제목에 담아 독자에게 건네고 싶었다. 내가 발견한, 예술로서의 삶 살기를 그들도 발견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_편집2팀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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