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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떨어진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남자의 품격》 본문

책세상 이야기/편집자 분투기

"고추 떨어진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남자의 품격》

책세상 2015.12.02 11:52

"고추 떨어진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남자의 품격》

차용구 지음 | 책세상 | 23,000원


플랑드르 지방의 기사였던 아르눌의 출생에서 노년에 이르는 삶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이상적인 남자, 남성다움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는 중세의 기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추적한다.




열 살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추 떨어진다”며 외할머니는 나나 동생을 부엌에 발도 못 붙이게 했다. 고래 잡을 당시의 고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던 때라, 고추가 떨어지면 얼마나 아플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했던 기억도 난다. 아울러 어린 마음에도 그런 외할머니가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남자는 부엌에 발을 들이지 못했던 예전이나, 요리하는 남자가 대세로 자리 잡은 요즘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대개 “남자가 말이야” 하는 말 아래 깔려있는 선입견이다. 남자라면 마땅히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생각하는 것들. 남자라면 자신은 물론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고, 관대한 마음으로 아랫사람을 보듬을 줄 알아야 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큰소리로 웃는 등의 경박(?)한 모습을 보이기보다 감정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는 따위의 것들이다. 이런 행동은 대개 ‘남자답다’라는 표현으로 칭송 아닌 칭송을 받는다. 여자나 남자나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남자가 말이야”를 들먹인다.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그만큼 뿌리 깊은 탓이리라.





『남자의 품격』은 이러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좀 더 정확하게는 “남자가 말이야”에서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역사적으로 접근한 연구서다. 저자 차용구는 남성성도 사회적 관습과 문화, 정치, 제도, 교육 등에 의해 학습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중세는 영주의 정치 행보에 따라 가문뿐 아니라 영지 내 백성들의 미래까지 좌우되던 시기였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귀족 남성의 책임은 커질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지위에 걸맞은 자질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이상적인 남자’, 즉 기사가 되기 위해 험난한 도전을 이겨내야 했다.


이 책의 주인공 아르눌은 열두 살이 되자 부모의 곁을 떠나, 상위 군주인 플랑드르 백작의 성에 머물면서 또래 남자아이들과 함께 기사 수업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중세 사회는 남자다운 행동규범을 제시하고 교육시켜 소년을 기사로 키워냈다. 아르눌은 그렇게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했고 이후 기사로서, 이상적인 남자로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여야만 했다.


편집하는 내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천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회를 지배하는 구조나 남자에게 요구하는 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런 남자들의 모습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남자가 말이야”하는 말 뒤에 따라오는 일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고추 떨어진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게 될 테니까 말이다. 『남자의 품격』이 남자라는 성을 가진 내 옆의 누군가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세상 기획편집4팀장 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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