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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미술의 유령과 유령되어 살아가기 - 이윤희 비평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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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미술의 유령과 유령되어 살아가기 - 이윤희 비평가

책세상 2015. 12. 1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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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 미술관의 유령들》

그림으로 읽는 욕망의 윤리학


백상현 지음 | 책세상 | 2014




동시대 미술작품의 제작과 해석이 현대철학에 빚진 바 크다 해도, 개개의 미술작품이나 현상을 기술할 때 툭하면 거론되는 철학자들의 이름과 개념이 부유하는 말들의 잔치일 뿐 작품에 대한 통찰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를 숱하게 보아 왔다. 그런데 이 책, 《라캉 미술관의 유령들》은 자크 라캉의 개념을 도구로 하여 르네상스 이래 현재까지의 미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뿐 아니라 그러한 미술을 바라보는 이의 실존적 삶의 문제에까지 가닿고 있다.


저자는 자크 라캉의 진리 개념을 통해 “이미지가 문명 속으로 받아들여지는 방식과 거부되는 방식을” 다룸으로써, 인간에게 “미술이라는 실천이 가진 의미”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저서의 제목은 책의 도입부에서 제시하는 저자의 개념틀을 숙지하지 않고서는 매우 낯설게 느껴지지만, ‘라캉’, ‘미술’, ‘유령’은 분명 이 책의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어들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라캉이라는 정신분석학자/사상가에 관한 것이 아니고, 좁은 미술사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지만도 않다. 저자는 라캉의 개념들과 미술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해, 표면적이고 부박한 현세의 삶과 그것을 넘어 진리를 좇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카라바조, 〈의심하는 도마〉, 1602년.


저자에 따르면 라캉의 진리 개념, 실체적 진리가 아닌 텅 빈 구멍과 같은, 이미 익숙한 현실이 파괴되는 것과도 같은 그러한 진리는, 탄탄한 대리석 건물의 균열처럼 미술사의 여기저기에 유령과도 같이 출몰했었다. 수학적 원근법으로 가시세계를 단단히 가둔 르네상스 시기의 대가 미켈란젤로의 후기 작품들이나, 카라바조의 종교화에 등장하는 범속한 인물들, 그리고 귀가 멀어버린 말년의 고야가 은둔해 있던 집 안의 곳곳에 그려 넣은 불가해한 이미지들은, 당대의 안전한 세계인식을 벗어나 텅 비어있는 무서운 곳, 진리의 세계에 근접하고자 하는 시도로 해석되고 있다.


각 시대의 개인들이 벗어나기 어려운, 벗어나기보다는 오히려 당대가 권유하는 삶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욕망할 수밖에 없는 한계는 현대에 와서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저자는 파악하고 있다. 세계의 모든 사물과 인간마저 교환가치로 환원되어 등급이 매겨지는 자본주의 세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이러한 인식체계 속에서 ‘진리’에 대한 추구는 이미 낡은 것처럼 보이며, 실체적 진리에 대한 사망선고는 여러 철학자와 사상가들에 의해 선언된 바 있다. 미술의 종말에 대한 여러 논의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고, 실제 동시대미술의 향방은 그 저변을 꿰뚫을 수 있는 뿌리의 실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리라는 전현대적으로 보이는 개념으로 현대미술의 정신적 핵심을 설명할 때 저자의 시각은 빛을 발한다.


적어도 현생의 인간이 살아생전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자본주의의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욕망을 욕망하는 방식으로 살아남고자 하는 개인에게 저자는 어떤 종류의 미술작품을 깊게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실체가 아닌 텅 빈 구멍을 응시하는 작품들, 깊은 수조의 바닥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면서도 숨을 참고 바닥으로 내려가는 방식을 택한 작품들, 명쾌하게 설명되는 단순한 도식의 세계에 지저분하게 묻은 얼룩과 같은 작품들은, 현세의 우리에게 진리의 감각을 일깨운다고 말이다.



소피 칼, 〈호텔, 룸 47〉, 1981년.



그리하여 저자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간신히 엿볼 수 있는 진리에 대한 감각으로, 세상을 살아보자고 말한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는 “‘유령되기’의 필드매뉴얼”이라는 재미난 제목이 붙어 있는데, 여기서 필드매뉴얼은 저자가 제안하는 살아가기의 방식이다. 그는 당연하게 주어진 세계의 틀에 저항하는 작가들의 태도를 본받아, 우리 모두가 자기 존재에 대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이승의 질서를 벗어나 유령 되기를 연습함으로써, 텅 빈 공백이 있음을 인정하고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제 인간관계에서 실천될 수 있는, 일종의 실제적 행동방침이다.


이로써 이 책은 최초에 저자의 유학시기 미술관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여, 미술작품을 비롯한 시각 이미지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일별하고, 다시 삶으로 돌아왔다. 저자가 끝내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것은 삶에서 진리 추구의 가능성, 포착불가능해 보이는 것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말자는 것이고, 그것은 단지 형이상학적 믿음이 아닌 일상의 모든 행위 속에서 실천할 수 있다는 방법론의 제시이다. 미술을 통해 다시 인간을, 삶을, 진리를 이야기하는 놀라움은 300페이지가 넘는 저서 전체의 매 페이지에서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서점의 철학서에 분류되어 있어도, 미술사 코너에 분류되어 있어도, 처세 코너에 분류되어 있어도 놀랍지 않을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 라캉과 미술사와 삶의 실제적 방식에 대한 논의들이 이 책에서는 한 몸이기 때문이다.


(월간미술 12월호에 실린 이윤희 미술비평가님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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