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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죽음이 아니라 인생의 미완성 《마흔아홉, 몽블랑 둘레길을 걷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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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죽음이 아니라 인생의 미완성 《마흔아홉, 몽블랑 둘레길을 걷다》

책세상 2015.12.30 15:39


《마흔아홉, 몽블랑 둘레길을 걷다
데이비드 르 베이 지음 | 서정아 옮김 | 14,800원


나이 오십을 목전에 두고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던 영국인 저자가 떠난 열흘간의 알프스 도보여행기. 친구 루퍼트와 함께 서유럽의 최고봉 몽블랑의 둘레를 일주하면서 지난 인생을 반추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의 가치를 전해주는, 진지한 사색과 자기 성찰, 유머가 잘 어우러진 여행 에세이.



보통 ‘산’이라고 하면 등정과 정복의 이미지가 우선 떠오른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는 몽블랑을 오르기보다 그 둘레를 열흘간 천천히 걷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산은 산이기에 험난한 오르막길도 적지 않아서 마냥 수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우박이 떨어지거나 하면 산행은 급격히 위험해지므로 날씨도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오르막과 내리막, 평탄한 길과 가파른 길이 번갈아 나타나는 산길은 역경과 탄탄대로가 교차하는 우리 인생길과 닮아 보인다.


몽블랑을 빙 두르는 여정이 삶의 순환과도 같다고 여긴 데이비드. 그는 몽블랑 둘레길 여행을 지난 삶을 돌아보며 내면에 귀 기울이는 기회로, 일과 책임의 압박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삶의 건강한 균형을 모색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전문 등반가나 여행가가 아닌, 나이 쉰을 앞두고 이런저런 상념에 젖은 중년 남성의 도보여행은 그만큼 친근한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자연스레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저자 데이비드 르 베이(David Le Vay)
런던에 산다. 아동심리치료사이자 대학교 교수, 재즈 피아니스트, 크리켓 선수로 누구보다 촘촘한 인생을 살며 모험을 도모한다.



올해 가을에는 거의 서울에 갇혀 지내다시피 했던 나는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유려하고도 생생하게 묘사된 자연 풍광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나름대로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을 오감으로 받아들이며 산속을 걸어볼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는 그의 목소리에 지난 산행의 추억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면서 새삼 깨달았다. 나 자신의 의지로 산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늘 누군가가 같이 가자고 하면 거절하지 않았을 뿐, 나 스스로 산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실행에 옮긴 적은 없었다.


체력이 형편없는데다 등산화나 등산 스틱 같은 장비도 갖추지 못한 나는, 과정이 고되어도 정상에 올랐을 때의 상쾌한 기분을 잊지 못해 산행 권유에 응해왔다. 그런데 3년 전 친구와 도봉산을 오르다, 혼자 등반하던 아저씨가 실족하여 헬리콥터로 이송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경험 탓일까. 이때 다소 충격을 받았는지 그 이후로 몸을 사리며 본격적인 등반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산과 멀어져 있었는데, 저자처럼 쉬엄쉬엄 산길 도보여행을 하는 정도면 나도 시도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 속에 등장하는 “산 앞에선 절대 호기를 부리는 게 아냐”라는 말을 잊지 말고 항상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몽블랑 산의 풍경




계속 산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 이 책은 단순한 산행 여행담에 그치지 않는다. 아동심리치료사이자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저자가 다양한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풀어낸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하여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알프스 곳곳에 깃든 역사와 전설, 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나눈 우정, 돌아가신 아버지와 유년 시절에 대한 추억, 산을 매개로 한 사색과 성찰, 일상을 벗어난 여행이 주는 치유의 힘…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신랄하게, 때로는 사색적이고 진지하게 풀어놓은 이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웃음과 감동, 깨달음을 동시에 선사한다. 몽블랑 둘레길 트레킹에 직접 도전해보려는 이에게 지침이 될, 숙소나 안전 장비 등의 실용적인 정보도 알차게 담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도전이란, 순간에 머무는 것이다. 속도를 늦추고 마음을 열어 지금 당장 일어나는 뜻밖의 일들을 경험해야지 과거나 미래에 지나치게 얽매여서는 안 된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특히 되새기게 된 문장이다. 우리는 지난 일을 후회하느라,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느라 지금 당장의 행복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사는 건 아닌지.






지난 11월, 생일을 기해 만 서른다섯이 된 나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 도입부에 등장하는 다음 구절을 줄곧 떠올리곤 했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각주:1]


단테가 살았던 당시의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짧다고는 하지만, 그가 ‘인생길 반 고비’라고 지칭한 서른다섯을 맞이하는 감회는 여러모로 복잡했다. 인생이란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스산한 깨달음, 과거에 대한 회한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뒤섞이면서 울적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그러던 와중에 접한 이 책의 문장은 나를 위로해주는 한편, 현재의 행복에 충실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굳게 하도록 만들었다.


저자 데이비드는 노인이라 하기엔 젊고 청춘이라 하기엔 어쩐지 민망한, 나이 쉰에 접어드는 인생의 전환점에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삶의 순환을 상징하는 듯한 몽블랑 둘레길을 걸으며 자신이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문제는 죽음 자체가 아니라 의미 없이 인생을 마치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의연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때로는 속도를 늦추고 당장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도 깨달았다. 나도 저자 데이비드처럼, 중년이라 하기엔 억울하고 청년이라 하기엔 쑥스러운 나이 반칠십을 기념(?)하여 나 자신을 돌아볼 계기가 되어줄 도보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이단네 책세상 편집2



  1.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 지옥편》, 박상진 옮김(민음사, 2007), 7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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