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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이야기/시로 여는 세상

낭만적인 하루살이의 삶

책세상 2011. 12. 12. 11:17

구스타프 클림트, <아기(요람)>


I  Was Born
                                 요시노 히로시                     
 
분명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어느 여름날 저녁 아버지와 함께 절 경내를 거닐고 있을 때
푸른 저녁 안개 속으로부터 피어나오듯 하얀 여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우아하고도 나긋하게
 
여자는 몸이 무거워 보였다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나는 여자의 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머리를 밑으로 둔 태아의 유연한 움직임을 배 위로 그려보면서
이윽고 그것이 이 세상에 태어날 그 신비로움에 빠져 있었다
 
여자는 지나갔다
 
소년의 망상은 쉬이 비약된다
그때 나는 ‘태어난다’는 것이
그야말로 ‘수동태’라는 사실을 불현듯 이해했다
나는 흥분하여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 I was born 이군요”

아버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I was born 이에요 수동태예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은 태어나는 것이로군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말예요”
 
그때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걷고 있다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하루살이라는 벌레는 말이야, 태어나서 이, 삼일 만에 죽는다는데
그럴 바에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본 시절이 있었단다”
나는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계속했다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어느 날 이것이 하루살이라며 확대경으로 보여주었다
설명에 의하면 입은 완전히 퇴화하여 먹이를 섭취하기에 적합하지 못하고
위를 절개해보아도 들어있는 것은 공기뿐 아무리 봐도 그렇다
그런데 알만은 뱃속에 소복이 쌓여 훌쭉한 가슴부위까지 꽉 차 있었단다
그것은 흡사 현기증 나도록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슬픔이
목덜미까지 치밀어 올라온 것 같았다
차가운 빛의 알이었다
내가 친구 쪽을 돌아보며 ‘알이다’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애달픈 알이로구나’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의 일이었단다
네 어머니가 너를 낳자마자 그만 세상을 떠난 것은”
 
아버지의 그 다음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아픔처럼 끊임없이 애달프게 내 뇌리에 꽂히는 것이 있었다
-훌쭉한 어머니의 가슴팍까지 숨 막히게 가득 메우고 있던
하얀 나의 육체-
 


그렇습니다. 삶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하루 벌어 하루 빚지며 산다’는 대답을 자주 합니다. 존엄성마저 침해 받는 세상에, 원하지도 않은 탄생에, 다 털리는 삶인데, 이럴 거면 왜 태어났나?라는 생각을 초딩처럼 해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하루살이처럼 계획 없고, 저축 없는 제 삶이 반항적이고 애달파서 좋습니다. 아무래도 전 낭만적인 하루살이인 것 같습니다.

애처로운 우리의 삶을 참으로 애잔하게 표현한 이 시를 저는 참 좋아라 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저를 낳으시고도 정정하시지만 어머니를 사랑하듯 제가 사랑한 사람들은 저를 잠시 품고 떠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품어준 덕분에 저는 말도 하고 글도 읽는 사람이 되었겠지요. 사랑했던 많은 친구와 애인, 그들과의 만남과 이별은 마치 무한 반복되는 하루살이의 삶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루살이가 영겁회귀를 한다면 그걸 하루살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문득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가 떠오릅니다. 내가 사랑한 자리마다 모두 폐허입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 없다는 것, 그것이 이 하루살이의 뼈아픈 후회입니다. 다음 생에는(내일은) 나의 폐허를 활짝 열고 타인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전 참 낭만적인 하루살이인 것 같습니다.

_편집부 최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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