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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풀로 베개를 삼다

책세상 2012. 1. 5. 16:21
풀로 베개를 삼다
―나쓰메 소세키와 《풀베개》 옮긴이 오석륜의 가상 인터뷰

오늘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로 잘 알려진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다른 소설 《풀베개草枕》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이 소설의 도입 부분은 삶의 교훈을 담고 있다고 해서 일본 사람들에게 명 구절로 알려져 있답니다. 산길을 올라가면서 생각한 것을 표현하는 대목이에요.^^

이지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고 이웃끼리 오고 가는 단지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옮겨 갈 나라는 없다. (7쪽)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

《나는 소세키로소이다》 등을 쓴 도쿄대의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소세키는 동시대의 풍속이나 사건을 절묘하게 끼워 넣어 독자의 관심을 유도한다. 그러면서도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고 작품마다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여 다른 장르를 다룸으로써 유사한 작품이 하나도 없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순문학이면서도 대중소설이기도 하다”고 평가하기도 하고 “소세키는 20세기 초에 이미 근대 문명의 어두운 면에 공포감을 느끼며 통찰했다. 현대의 우리도 같은 시대의 시스템 아래 살고 있는 이상 앞으로도 소세키는 계속 읽힐 것이다”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오늘 《풀베개》를 함께 읽어보아요.
* * *

오석륜_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풀베개》가 책세상에서 소개됩니다. 우선 한국 독자들에게 간단하게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소세키_ 시대를 초월해 여러분을 만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특히 한국은 일본에서만큼이나 저의 소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니 한일 문학의 동반자적 시각에서 좋은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석륜_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를 전후해서 선생님께서 이 작품에 대해 평가를 내렸다고 들었습니다. 잠깐 들려주시죠.
소세키_ 당시 제가 독일 문학자이자 문예평론가인 고미야 도요타카小宮豊隆에게 보낸 편지와 《신소설新小說》이라는 잡지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소설은 천지개벽 이래 유례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개벽 이후의 걸작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만. 아마도 서양에서는 이런 종류의 소설은 아직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일본에도 없었지요. 그것이 일본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선 일본 소설계에 새로운 운동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이 작품에 제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시면 되겠죠.         

오석륜_ 그렇다면 선생님의 다른 작품들은 어떻습니까?
소세키_ 우선 저의 처녀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한국에서도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생문寫生文으로 쓴 소설입니다. 사생문이란 당시 저의 절친한 친구이자 하이쿠 작가인 마사오키 시키正岡子規가 중심이 되어 시작한 것으로, 본 것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양식입니다. 이 작품은 유머와 풍자, 비평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지요. 마쓰야마 중학교의 영어 교사로 있던 시절의 경험을 살려서 펴낸 작품 《도련님坊っちゃん》도 같은 계열의 풍자 문학이지만, 명쾌한 주제와 단순한 주인공, 유형적인 등장인물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지요. 아마 한국에서는 이 두 작품이 잘 알려져 있을 겁니다. 《풀베개》도 이 무렵의 작품입니다.

오석륜_ 그런데 왜 제목이 ‘풀베개’입니까? 조금은 특이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소세키_ ‘풀베개’는 ‘풀로써 베개를 삼는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행을 상징한다고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자연 속 비인정의 경지를 상징하는 말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고요.
이 소설은 전편을 통해서 비인정의 여행을 만끽하고 싶어 하는 화가의 예술적이고 유미적인 감각 표현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염세에 바탕을 둔 인생관, 문명관도 토로하고 있어, 일종의 사상소설思想小說처럼 느껴지기도 할 겁니다.

나미

하시구치 고요橋口五葉, 유카타를 입은 여인夏衣の女(1920)_고요는 소세키의 일러스트, 표지 그림 등을 그렸다.

오석륜_ 《풀베개》에서는 개성적인 인물이 등장합니다. 도쿄에서 온 서른 살의 ‘나’는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적어도 여행을 하는 동안만큼은 ‘이해利害’나 ‘인정’이라는 세속적인 관념에서 벗어나려는 희망을 품고 길을 떠난 사람입니다.
소세키_ 그렇지요. 그는 이십 세기의 서양에 도취한 세상을 떠나 초연히 출가자적인 동양의 시가에 묻히고 싶어 하는 인물입니다. 여기서 동양의 시가란 한시라고 볼 수 있죠. 그는 그런 세계를 묘사하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런 자연과 벗하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나’는 마부나 찻집의 할머니, 그 외에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그림 속의 인물’, ‘자연의 경치’로 파악하고자 하지요.

오석륜_ 여자 주인공 나미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재기 발랄한 여성으로 묘사됩니다.
소세키_ 작품에서 전개되는 두 주인공의 묘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그녀의 강렬한 개성과 분방한 언동에 놀랍니다. 그는 그녀를 그려보려고 하지만, 도저히 그려낼 수 없습니다. 그녀를 둘러싼 경치는 그려낼 수 있지만, 중요한 여자의 표정을 결정하지 못하는 화가의 안타까움이 그려지지요. 화가인 그는 ‘애련함’이야말로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의 나미에게는 재기 발랄한 기색이 너무나 강해서 그림으로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쟁터로 나가는 그녀의 사촌동생 규이치를 역까지 배웅하기 위해서 모두들 산을 내려가지요. 규이치를 태우고 움직이기 시작한 열차 창에서, 몰락해서 중국 동북부로 가는 헤어진 나미의 남편이 얼굴을 내밉니다. 그때 망연해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애련함이 떠올라, 화가인 나는 마침내 그림을 완성하게 되지요. 한국의 독자들이 지금 제 얘기만을 듣고 그녀의 모습을 그림으로 완성할 수 있을는지…….
화가는 그림을 완성했지만 그것은 비인정의 미학에 의해서, 여성을 그림 속의 사람으로 삼는 형태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석륜_ 이 소설을 하이쿠적 소설이라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세키_ 예, 그렇게 볼 수 있지요. 평범한 자연을 섬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수법이 작품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양갱을 보고 “겉이 매끈하고 치밀한데다가 반투명한 속에 광선을 받아들일 때는, 아무리 보아도 하나의 미술품이다”라고 표현합니다. 또한 동백에 대한 “나는 산속의 동백을 볼 때마다 늘 요녀의 모습을 연상한다. 검은 눈으로 사람을 낚아 들이고, 모르는 사이에 요염한 독기를 혈관에 불어넣는다. 속았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다……그 꽃 빛깔은 단순한 빨강이 아니다. 눈부실 만큼 화려한 빛깔 속에 말 못할 침울한 운율을 간직하고 있다……본 사람은 그녀의 마력에서 절대로 헤어날 수 없다. 그 빛깔은 단순한 빨강이 아니다. 도살된 죄수의 피가, 저절로 사람의 눈을 끌어서, 저절로 사람의 마음을 불쾌하게 하듯이 이상야릇한 빨강이다……또 하나 큰 송이가 피를 칠한 사람의 혼백처럼 떨어진다. 또 떨어진다. 뚝뚝 떨어진다. 한없이 떨어진다”라는 표현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실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소설을 하이쿠적 소설이라고 하는 후학들의 평가에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물론 그런 예는 본문에서 직접적인 하이쿠 표현으로도 나왔지요. 모과 꽃을 칭찬하는 표현 등도 그러한 예에 해당하겠지요. 작품 속에 몇 편의 한시를 지어 넣은 것도 그런 시각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오석륜_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선생님의 이 소설이 한국인들에게 많이 읽히고, 사랑받기를 기원합니다.
소세키_ 오 선생과 시간을 초월하여 만날 수 있다면 소설 속의 주인공인 화가와 나미까지 함께 어울려 한국 전통 술인 막걸리 한잔 하면 어떻겠습니까. 꿈에서라도 만납시다. 소설 속의 두 주인공에 취해보고, 술에도 취해봅시다.   



일본 근대 문학의 대표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는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8번째 권이다. 하이쿠나 한시, 그림 등을 차용하는 장르적 시도와 함께, 자연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수법을 통해 동양적 미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염세적이라는 측면에서 다분히 작가 소세키를 닮은 주인공은 한적한 곳에가서 그림을 완성하길 원하는 화가. 현실 도피적인 수단으로 비인정한 공간을 찾아 여행길에 오르지만, 그곳에서도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소세키는 작품 속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한 사상가, 문인, 화가들의 작품을 논하고, 직접 하이쿠를 짓거나 한시와 영시를 인용한다. 또 여러 예술론을 섭렵하고, 그에 동의를 표하거나 반박함으로써 자신의 예술관을 펼쳐 보인다. 한편 자유롭게 장르를 넘나들면서 서사의 맥락과는 무관한 문장 자체의 미를 추구하기도 한다.

덧. 이 인터뷰는 히라오카 도시오(平岡敏夫) 외, 《나쓰메 소세키 사전(夏目漱石事典)》(東京 : 勉誠出版, 2000) ; 아바에 다카오(饗庭孝南) 외, 《신편 일본문학사(新編日本文學史)》(東京 : 第一學習社, 1969, 개정판 2003) ; 요시노 다카오(吉野孝雄) 외 편, 《일본문학가이드(日本文學ガイド)》(東京 : 河出書房新社, 1996) ; 다카사키 소지(高崎宗治), 〈일본지식인의 조선기행(日本知識人の朝鮮紀行)〉, 《한국문학연구》(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04) ; 유상희, 《나쓰메 소세키 연구》(보고사, 2001)를 참고로 하여 옮긴이가 가상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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