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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이야기/시로 여는 세상

먹어도 먹어도 늘 배고픈 밤, 지금 무얼 드시나요?

책세상 2012. 1. 16. 21:41
햄버거
박성우

거대한 입술과 날름거리는 혓바닥이 제 몸의 전부인 저
굶주린 입들 무한궤도로 달려와 아이들을 삼키고 있다
입안 가득 고깃덩이를 물고도 늘 배고픈.



#1
문득 햄버거에 맥주(콜라 말고요^^;)가 당기는 저녁입니다.
요즘 현관문에 유독 수제(슬로푸드의 탈을 쓴 패스트푸드) 버거 가게 전단지가 많이 붙어 있어요. 치킨, 피자에 이어 이제 버거까지. 집 앞에도 수제(라 쓰고 특제…아니 그냥 크게 만드는) 햄버거 가게가 생겨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 퇴근길에 먹곤 한답니다.

#2
연말에 건강검진을 받고 얼마 전 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올해 열여덟 아니 스물여덟 꽃띠 처자이옵니다만,
그 결과가 참담합니다.
고혈압이랍니다. 짜게 먹지요? 네.
술, 커피 많이 하지요? 네. 그래도 술 많이 마시는 건 아니고 자기 전에 맥주 한두 잔 마시는 정도인데요. 그것도 매일은 아니고…
고혈압엔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마시는 게 더 나빠요. 아, 네…

#4
몸이 ‘아프다’기보다 몸이 ‘이상하다’는 감각을 느끼던 요즘입니다.
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 머리가 이상하고
심장이 아픈 게 아니라 심장이 이상하고
팔다리가 아픈 게 아니라 정말 이상하고
속이 아픈 게 아니라 계속 불편한 상태.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그런 감각이요.

하지만 그런 감각을 느끼면서도 아픈 건 아니니까!라며 제 몸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만행을 저질러왔습니다.
오늘은 모임이 있으니까 고기에 술, 오늘은 쓸쓸하니까 자기 전에 야식, 오늘은 잠이 안 오니까 한 잔 하고, 오늘은 우울하니까 초콜릿과 과자 따위를 잔뜩 먹고, 오늘은 졸리니까 커피 세 잔 마시고, 오늘은 스트레스 쌓였으니까 맵고 자극적인 걸로~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저처럼 ‘이상한 나’가 출현하기에 이른 것이겠지요?

#5
서양 속담에 “I am what I eat”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내가 먹는 것이 나’라는 뜻으로, 먹는 것이 ‘나’라는 존재와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것이죠. 어느 프랑스 미식가는 “당신이 어떤 것들을 먹는지 알려주면 내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드리지요”(브리야 사바랭)라고 했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어쩌면 곰곰이 생각할 것도 없이) 비단 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닌 듯합니다. 모임은 늘 고기와 술이 함께해야 하고, 차도녀라면 밤을 쓸쓸하고 우울하게 보내기 마련이며(응?), 사회인으로서 아침엔 늘 출근해서 저녁까지 일해야 하며, 제 손으로 밥 한 끼 지어먹는 것보다 나가서 사 먹는 것이 훨씬 손쉽고,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경로로 내 입에 들어오는지 알지도 못한 채(어쩌면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꾸역꾸역 넣기 바쁜, 심지어 먹어도 먹어도 늘 허기지게 하는 이 시대의 문제가 아닐까요.
이런 이상한 ‘시공간’ 속에서 이상한 ‘나’는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닌 것도 같습니다. 저 같은 ‘나’가 얼마나 많을까요? (살포시 손)

#6
문득 햄버거에 맥주가 당기는 밤을 살포시 밀어내 봅니다.

오늘밤은 군고구마에 유자차, 함께해요.


_편집부 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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