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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행, 발로 쓰는ㅡ삶이 무거울 때 읽고 떠나고 쓰고 본문

책세상 책읽기/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삶은 여행, 발로 쓰는ㅡ삶이 무거울 때 읽고 떠나고 쓰고

책세상 2012.01.19 13:03
안녕하세요. 책세상 쥬입니다.^^
오늘은 제가 1년 전 이맘 때 썼던 글을 소개해드릴까 해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귀던 애인과 헤어지고 훌쩍 여행을 떠나 3개월을 보내고 돌아와 또 4개월을 지내면서, 그 끝자락에 책세상에 지원하면서 썼던 서평이랍니다. 전문은 길어서 일부 발췌·편집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다시 보니 낯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때 나름의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이렇게 일하고 있는 걸 보면 그 진심을 알아주셨던 거겠죠? 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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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발로 쓴다.
나는 손으로만 쓰는 것은 아니다.
발도 항상 글 쓰는 사람과 함께하길 원한다.
내 발은 확고하고 자유롭고 용감하게
들판을, 종이 위를 달린다.
―이진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110쪽

확고하고 자유롭고 용감한 니체의 철학을 ‘발로 써 내려간’(^^; 그러나) 아름다운 이진우 교수의 글은 그 어떤 여행보다도 설레고 즐거웠다. 철학은 철학자의 수만큼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한 철학자의 철학은 또 그 철학을 만나는 사람만큼의 수가 있다. 나는 이진우 교수의 니체를 통해 나만의 니체를 찾는 여행을 떠났다.

우리의 삶은 하나의 여행이다. 우리가 누구이든, 우리 모두는 무엇으로 ‘되어가는’ 존재이다. 무엇이 되고 싶은가?
―위의 책, 10쪽

우리는 ‘무엇’이 되기 위해 그 무엇을 설정해놓고는 자기를 채우려 하고, 더 많이 가지려 욕망한다. 마치 채우고 더 가지면 그 ‘무엇’(심지어 자신이 설정한 것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이 될 것처럼.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욕망에 사로잡혀 욕망 안에 갇히고 만다. 그때의 내가 그랬다. ‘되어가는’ 존재로서의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나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몫 이상을 바라면서 거기에 짓눌려 있었던 나, 그래서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견뎌내지 못하고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며 한없이 무거워져 있던 그때, 니체가 다가왔다.

자신만으로 견디어낼 수 있기 위해, 그리고 (위선적으로 사랑할 이웃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건전하고 건강한 애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니체전집 1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력의 영에 대하여 2〉

하지만 그때는 니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겉만 핥았던 것이 아닐까.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고 소화시키지 못한 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며 나를 둘러싼 배치에서 벗어나려 했고, 그렇게 비유가 아닌 진짜 여행을 떠났다. 다 버리고, 다 내려놓고, 타국으로 훌쩍 떠난 3개월. 하지만 무작정 떠난다고 버려지는 것이, 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여행을 떠나기 전, 조금 더 일찍 이진우 교수의 니체를 만났더라면 이토록 오랜 방황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긍정하라는 니체의 메시지를 듣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이 책을 만나 다시 또 새로운 여행을 떠날 수 있었음을 감사히 여긴다. 마침내 니체를 섭취할 수 있을 만큼 비워지고 비워진 이 여행의 끝자락에 선 지금, 중력의 영으로부터 조금쯤 가벼워진 몸을 느낀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무한한 우주 공간을 바라보듯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은하수를 자신 안에 간직한 사람은 모든 은하수들이 얼마나 불규칙한가를 안다. 이들은 실존의 카오스와 미로에 이르기까지 헤치고 들어간다.
―이진우,《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134쪽

해 지기 전 홋카이도 비에이

90일간의 여행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홋카이도 중심에 있는 어느 시골 마을에서의 밤,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무서우리만치 적막한 어둠 속에서 은하수를 올려다 본 그 순간. 마치 우주에 저 혼자 있는 듯한 그 기분( 차라리 한 마리의 짐승이 되고 싶었던). 하지만 그 무수하고 촘촘한 별들이 은하수를 이루듯 수없이 많은 인연들과 관계 속에 내가 있는 것이리라.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다. 나는 수많은 나를 생성해내면서 내 삶을 여행해온 것이다. 나를 무엇으로 규정하려 하지 않고, 그저 지금까지 나를, 내 삶을 만들어온 인연을, 관계를 돌이켜본다.

너는 이 삶을 다시 한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그대 자신과 그대의 삶을 만들어나가야만 하는가?
―니체 12, 《즐거운 학문》, 〈제5부〉

‘무엇’이 되기 위한 삶이 아니라 ‘되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삶,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수 있는 삶,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보다 더 아름답고 명확한 삶의 철학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 철학에 나는 ‘예’라고 답한다. 다시 살기를 원한다고. 이 업을 수없이 반복하기를 원한다고. 무수한 반복이 차이를 만들어내고 그 차이가 지금의 나를 변화시킨다. 나는 마주치면서, 흐르면서, 무엇이든 되리라. 강렬하게 감응하고 춤추리라. 창조하며 살리라. 니체와 살로메의 만남처럼, 니체와 이진우 교수의 여행처럼,
발로, 손으로만이 아니라, 내 발로 확고하고 자유롭고 용감하게.

_편집부 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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