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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책읽기/반항하는 인간 카뮈

이방인, 누구나 다 특권을 가지고 있다

책세상 2012.02.01 13:47
우리 주변엔 뫼르소가 넘쳐난다
아무도 그처럼 행복하게 죽지 못할 테고 소리치지 못할 뿐



살면서 무얼 모르는지조차 몰랐던 10대 후반에 처음 읽은 이방인, 그리고 20대 초반에 의무감으로 읽은 《이방인》…황당하고 복잡하기만 한 의미를 주었던 소설.

마흔 중반이 되어 이방인을 다시 잡게 되니 쑥스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전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 특히 간격을 수십 년으로 넓혀 읽으면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아무튼 마치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촌스러운 장난감을 우연히 다시 가지고 놀며 만져보는 느낌이다.

카뮈의 이방인. 수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테고, 읽지 않았어도 학력고사나 수능 필독도서로 요점 정리된 줄거리를 누구나 접해보았을 소설. 줄거리는 생략하자.

나는 10대 후반에, 20대 초반에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알았어도 그동안 잊고 살았나?

20년 전에도 카뮈의 문체가 이토록 간결하게 느껴졌나? 인간 내면을 자연과 교묘하게 어울리게 하면서 이토록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카뮈의 작품에 늘 등장하는 태양, 바람, 바다(클레지오 소설에는 늘 바람, 사막, 먼지가 등장하듯이)…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아무 변화도 없는 듯한 그 상태의 자연과 소외된 한 인간이 결국 같은 사물처럼 느껴지는….

영화 <이방인>(루키노 비스콘티 作)

작품이 발표된 것은 1942년, 2차 대전이 한창이던 그 시대의 분위기라면 그 당시 사람들의 심리가 모두 이러하지 않았을까? 눈뜨면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나가고 팔다리가 잘려나가며 굶어 죽기가 예사였던 그때 어느 누가 인생은 이것이다, 라고 얘기할 수 있었을까? 작가는 당시 사람들이 늘 말이 없고 짧게 얘기하거나 매사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음을 주인공을 통해 소리 높여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왜 엄마의 죽음에 눈물이 나오지 않았는지. 태양에 눈이 부셔 방아쇠를 당기게 되었는지.

주인공 뫼르소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고해를 바라는 부속사제에게 멱살을 잡으며 소리치는 마지막 부분은 통쾌하다.

…나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신부복 깃을 움켜잡았다. 기쁘고 분노가 뒤섞인 채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마음속을 송두리째 쏟아버렸다. 너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다. 그렇지 않고 뭐냐? 그러나 너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가치도 없어. (중략)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너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중략)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너의 그 하나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숙명,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택하도록 되어 있고, 더불어 너처럼 나의 형제라고 하는 수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알아듣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을 가지고 있다
_156~157쪽
영화 <이방인>(루키노 비스콘티 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폭발적인 반응이 안 나왔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리라. 그런데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왜 다시 20세기 사람들과 같은 느낌을 받는 걸까?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스카이프로 대륙 저편에 있는 사람들과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교류하고, 말과 행동을 맘껏 공유하는 첨단의 신세기에 살면서도, 이전 세대가 품었던 부조리한 삶에 대한 반항심에 깊이 감응한다면, 그렇다면, 부조리한 우리의 삶은 한 치도 나아지지 않고 해결되지 않았단 말인가? 나만 그런 것인가? 이방인을 읽는 요즘 세대들도 그러할까?

내 생각엔 우리 주변엔 뫼르소가 넘쳐난다. 아무도 그처럼 행복하게 죽지 못할 테고 소리치지 못할 뿐.

_애독자 J. J. Y

*책세상 '애'독자, 특히 카뮈에 '애'정 담뿍 쏟으신다는 J. J. Y님께서 보내오신 서평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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