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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어떤 사랑에 대한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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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어떤 사랑에 대한 이야기…

책세상 2012. 2. 7. 16:30

사카구치 안고 <백치>

│활자유랑자 금정연

사내는 곤경에 처했다. 사내의 이름은 이자와, 스물일곱 살의 영화사 직원이다. 패전의 기운이 먹구름처럼 드리운 1945년의 도쿄. 지붕 아래로는 사람과 돼지와 닭과 오리가 함께 뒤엉켜 살아가고, 지붕 위 하늘에선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연합군의 무차별 공습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 살아있다는 사실이 내일의 목숨을 보장해주지 않는 위태로운 나날들. 하지만 사내를 괴롭히는 것은 위태로움이 아니다. 오히려 “생명의 불안과 위태로운 놀이를 하는 것이 하루하루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다. 경보가 해제되면 생기를 잃고 또다시 절망적인 감정 상실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무엇이 그의 생기를 앗아가는가? 그것은 직업이다. 모든 물자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전시상황에서 꼬박꼬박 담배와 술과 월급을 주는 안정적인 직업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도 마찬가지다. 바로 그 사실이 그를 괴롭힌다.


그에게는 그러나 훨씬 비소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비소한 문제라 하겠으나 언제나 그의 코앞에 닥쳐 있었고 눈앞을 어른거리며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 문제란 다름 아닌 그가 회사에서 받는 이백 엔 남짓의 급여로서, 그 급여를 언제까지 받을 수 있을지, 내일이라도 당장 목이 잘려 길거리를 헤매는 신세가 되지는 않을지 불안했다. 월급을 받을 때마다 그와 동시에 해고 선고를 받지나 않을까 움츠러들었으며 월급봉투를 받아들면 한 달 늘어난 목숨 때문에 어처구니없을 만큼 행복감에 젖었지만, 스스로 그 비소함을 돌이켜 생각할 때면 언제나 울고 싶어졌다. 그는 예술을 꿈꾸었다. 예술 앞에서는 티끌보다 작게 생각되는 이백 엔의 급여가 어째서 뼛속에 사무치며 생존의 근저를 뒤흔들 만큼의 커다란 고뇌가 되는 것일까. 생활의 외양만이 아니라 그의 정신도 영혼도 이백 엔에 한정되어, 그 비소함을 응시하면서도 미치지도 않고 태연하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더더욱 한심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107쪽)


문제는 예술이고 예술을 방해하는 생활이고 그것을 뿌리칠 수 없는 바로 그 자신이다. “바닥 모를 지루함을 제공하는 기묘한 영화들”만을 찍어내는 직장 동료들의 저속하고 비열한 영혼을 증오하면서도 박차고 나가지 못하는 자신이야말로 모든 곤경의 원인이다. 그는 차라리 모든 것이 철저하고도 공평하게 무너지기를 바란다. 일본 전체가 돌무더기 쓰레기로 뒤덮인 벌판이 되기를 기다린다. 그 후에야 비로소 시작될 어떤 재생을, 새로운 삶을 꿈꾼다. 단지 꿈꿀 뿐이다. 그리고 “꿈속에서까지 이백 엔에 목 졸리고 가위눌려, 아직 스물일곱 살인 청춘의 온갖 정열을 표백당한 채 벌써 암흑의 황야와 같은 현실 속을 망망히 걷고 있을 뿐”인 자신을 저주한다. 스스로 만들어낸 늪 속으로, 그는 점점 더 깊숙하게 빠져들고 있다.


이자와의 옆집에는 백치가 산다. 미친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끊임없이 시달리지만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구제할 방법은 모르는 여자다. 간혹 학대를 당할 때면 집에서 뛰쳐나와 이자와의 마당에 있는 돼지우리로 몸을 숨기지만,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면 온몸을 떨다가도 결국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지옥을 향해 자신의 두 발로 걸어가는 여자다.


그러던 어느 날, 이자와의 삶 속으로 그녀가 들어온다. 늦은 퇴근을 하고 돌아온 밤. 이자와는 그의 집에 숨어있던 그녀를 발견한다. 돼지우리 대신 이자와의 장롱을 택했던 것이다. 그녀는 겁에 질렸고, 밤은 이미 늦었다. 그는 그녀에게 하룻밤의 은신처를 제공하기로 한다. 날이 밝은 후 그녀를 돌려보낸다면 미치광이 남편이 어떤 미친 짓을 할지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기묘한 충동이 그를 사로잡는다.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의 장난. 그는 이 상황을, 자신의 삶이 감내해야 할 하나의 시련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그저 자신의 비소하고도 비루한 일상을 잊게 할 사건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치기 어린 결정은 그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낯선 곳으로 그를 데려간다.



*

당면한 과제를 수행하며 사내는 곤경을 잊었다. 이자와는 하나의 이부자리를 두 개로 나누어 여자를 눕힌다. 자신도 그 옆에, 그러나 충분한 거리를 두고 눕는다. 그 순간 아마도 그는 어떤 만족감을 느꼈으리라. 곤경에 처한 여인을 구해주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녀에게 어떤 흑심도 품고 있지 않은 자기 자신에게. 하지만 여자는 이내 이불을 박차고 나간다.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는다. 추운 날이다. 그는 당황한다. 그녀는 도대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걸까? 여자를 달래 다시 자리에 눕혀보지만 그때뿐이다. 심지어는 벽장 안으로 몸을 숨기기까지 한다. 화가 난 이자와는 소리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더 이상 내 인격을 모독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녀가 그의 말을 알아들을 리 없다. 어디까지나 백치인 것이다. 할 말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던 이자와는 어느 순간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가 “전등을 끄고서 일이 분이 지나도 남자가 여자의 몸에 손을 대지 않는다 하여 남자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라고 자각하고” 수치를 이기지 못한 나머지 이불을 빠져나가 스스로를 벽장 속에 유폐해야 했다는 사실을.


순간 이자와는 먹먹함을 느낀다. 백치의 지나온 삶에 어렴풋한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동물과도 같은 삶일 것이다. 별다른 생각도 고민도 없이 꼼지락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벌레의 삶일 것이다. 영혼은 사라지고 육체만 남아 오직 본능으로만 살아가는 육체의 삶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그것이야말로 어줍은 정상인의 분별을 넘어선 마음이다. 어리고 아무 꾸밈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정직한 마음이다. 이자와는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어딘가에 잊고서, 그저 아등바등 살기에 바쁜 인간들의 틈바구니에서 거무칙칙하게 더럽혀져 허망한 환영을 좇으며 심히 지쳐갔던 것이다.


그녀를 다시 눕힌 그는 마치 서너 살 먹은 딸아이를 재우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멍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그녀에게 타이르듯 말한다. “당신이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야. 인간의 애정 표현은 결코 육체로만 하는 게 아니거든. 인간의 최후의 안식처는 고향인데 당신은 이를테면 언제나 그 고향에 머무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지만 도무지 말이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말은 인간의 애정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자와는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자신의 마음에서 싹트는 작은 애정의 희미한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감을 의식하며, 차라리 울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계속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그녀야말로 그의 삶에 필요한 무엇임을 애달프게 깨닫는다.


이 백치 여자는 밥을 지을 줄도 된장국도 끓일 줄도 모른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란 배급 행렬에 끼어 서 있는 일에 불과하며 말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마치 가장 얇은 유리와 같이 희로애락의 미풍에도 반향하며, 주로 멍하게 넋을 놓고 있거나 겁에 질려 지내는 시간 사이사이의 틈새로 타인의 의지를 수용하고 또 통과시킬 뿐이다. 이백 엔의 악령조차도 이 영혼에는 깃들지 못한다. 이 여자는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슬픈 인형 같지 않은가. 이자와는 이 여자와 서로 부둥켜안고 바람 부는 어두운 황야를 표표히 걸어가는 무한한 여로를 그렸다. (110쪽)


만약 이것이 소설의 마지막이라면 ‘백치’는 평범한 러브 스토리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사카구치 안고가 그런 소설을 쓸 리가 없다.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사내는 여전히 곤경에 처해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곤경이다. 그녀가 그의 집에 눌러앉게 된 것이다. 미친 남편은 그 사실을 모른다. 누구도 모른다. 이자와는 불안하다. 혹시라도 그가 집을 비운 사이 공습이라도 시작된다면, 놀란 그녀가 발광이라도 하며 집 밖으로 도망친다면, 그래서 사람들에게 발각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예술과 생활, 그 도무지 줄일 수 없을 것 같았던 간극은 더 이상 그의 문제가 아니다. 씻을 수 없는 불안과 누구에게든 고백함으로써 그 불안을 해소하고 싶은 비열한 마음 사이에서 그는 절망한다. 자신이 그토록 경멸해왔던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깨달은 것이다.

그는 그녀 또한 경멸한다. 자신만을 기다리는 육체에 불과한 그녀를. 그 외에는 어떤 생활도, 단 한 조각의 사고조차 없이 그의 손이 살짝 닿기만 해도 그 즉시 육체 행위를 갈망하는 그녀를. 심지어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에도 그의 몸이 스치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같은 반응을 일으키는 그녀를. 아무 때고 잠에서 깨어나는 육욕과 마치 벌레처럼 한결같게 반응하며 꿈틀대는 그녀의 육체를 견딜 수 없다. 어떤 의식도 자각도 없는 고깃덩어리와도 같은 그녀의 존재를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절대 고독하다. 하지만 타인의 존재를 자각할 때 비로소 절대 고독도 생겨나는 것으로, 이 정도로까지 맹목적이며 무자각적인 절대 고독이 있을 수 있을까. 애벌레의 고독이라 할 그 절대적 고독이 띠는 형상의 비참함이란! 마음이라는 것의 그림자, 그 편린조차 없는 고통이 띠는 현상의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추악함이란! (117쪽)


그를 구원하는 것은 이제 직장이다. 혹시라도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파국이 두려워 그는 귀가를 미룬다. 매일 밤이 늦어서야 집을 찾는다. 그는 차라리 집이 폭격당하기를, 깨끗하게 불타버리기를 바란다. 그녀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는 날을, 그리하여 그의 삶에 얼룩처럼 묻어 있는 그녀의 흔적 또한 깨끗하게 사라지는 날을 가만히 기다린다.


나는 단지 추악한 것이 싫을 뿐이다. 게다가 원래부터 영혼을 갖지 않는 육체가 타죽을 뿐이지 않은가. 나는 여자를 죽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는 비열하고 저속한 남자니까. 나에겐 그만한 배짱도 없다. 허나 아마도 전쟁이 여자를 죽일 것이다. 그 전쟁의 냉혹한 손길이 여자의 머리 위로 향하게 하기 위해 아주 작은 실마리만을 포착하면 된다. 나는 아직 모른다. 아마도, 무언가 어떤 순간이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해버릴 것이다. 그리고 이자와는 지극히 냉정하게 공습을 기다렸다. (118쪽)


그리고 마침내 하늘에서 폭탄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

자, 이제 내가 곤경에 처할 차례다.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는 이 자리에서 소설의 결말을 늘어놓을 마음이 없다. 그러니 모든 것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그럴듯하게 이 글을 마무리하는 수고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을 했기 때문도 아니다(그건 사실이지만 별개의 문제다). 어떤 소설은 몇 줄의 이야기로 요약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좋은 소설의 첫 번째 조건이다. 카프카의 <변신>을 “한 남자가 어느 날 잠에서 깨어 벌레가 된 자신을 발견한 후 결국 죽어버리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준 당신에 대한 답례로 가장 즐거운 부분을 당신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떤 만족감을 느낀다. 아마도 이자와가 백치 여인을 자리에 눕히며 느꼈을 그런 만족감을.


물론 힌트는 있다. 이것은 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채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자폐적인 남자(소년)와 그의 앞에 나타난, 기댈 곳이라고는 그밖에 없는 무력하고 병든 여자(소녀)가 서로를 위로하며 커다랗고 무자비한 세상에 맞서는 이야기.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지만 함께 있는 한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는, 나아가 그들의 사랑이 세계를 구원하는 어떤 완벽한 사랑에 대한, 수없이 많은 일본 만화와 대중소설과 애니메이션에서 오늘까지도 변주하고 있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모종의 영향관계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사카구치 안고로부터 ‘세카이계(セカイ系)’ 소설에 이르는 현대 일본문학사를 다시 써보는 일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그녀와의 동거 이후 미묘하게 변한 이자와의 심경에서 드러나듯)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그로 인해 잔인하게 파괴되는 어떤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책의 말미에 실린 작가와의 가상 인터뷰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랑에 대한 갈구와 사랑을 확인하고픈 욕망이 본연의 인간성임을 인정하고, 모든 것이 파괴된 패전 후의 삶을 그러한 인간 인식에 기초한 새로운 윤리 위에서 새로이 시작해나갈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에 가깝다고 할까. 단지 가깝다, 라고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읽는 이에 따라서 감상이 극명하게 갈릴 수도 있는 결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그냥 이렇게 말할 생각이다. 이것은 ‘어떤’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나’도, ‘너’도, 세상도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같은 작품집에 실린 안고의 다른 작품들(<어디로>, <나는 바다를 껴안고 싶다>)과도 다른 이야기라고. 다른 좋은 작품들이 그런 것처럼 세상에 대한 당신의 가치관과 태도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주는 이야기라고. 내가 조금만 더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거라고.

그래, 나는 이렇게 말했을 거다.

이 소설에 대한 당신의 감상을 내게 말해준다면 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라고.

그전에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을 스스로 평가해봤을 때, 나는 아직 인간이 되려면 멀었다는 사실. 물론 그건 이 글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_이미지 출처 | 영화 <백치>(테즈카 마코토手塚 眞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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