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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그런데 한가지 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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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그런데 한가지 더!

책세상 2012.03.08 10:59
활자유랑자 금정연

1.
친애하는 책세상 출판사의 블로그를 위해 이번 달에 내가 선택한 책은 이오인 콜퍼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6》이다. 잠깐, 이오인 콜퍼라고? 더글러스 애덤스가 아니라? 게다가 6이라니, 1에서 5까지는 어디로 갔는데?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더글러스 애덤스에 의해 1978년 3월 8일 BBC 라디오 드라마로 시작된 <안내서> 시리즈는 이어 책으로, 음반으로, 다시 라디오와 음반과 책으로, 이윽고 텔레비전 드라마로, 또 책으로, 끝내 촬영되지 않은 (최후의 심판일 직전에야 촬영이 시작될 거라는 소문이 돌던) 영화 대본으로, 마지막 책으로, 심지어 연극과 만화와 게임과 수건(!)으로, 이번엔 진짜 마지막 책으로, 그리고 작가 사후인 2005년 마침내 영화로 만들어지며 최후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공식적으로 알린 우주적으로 유명한 SF 프랜차이즈다.

영화 포스터

얼마나 유명하냐고?

당신과 내가 알 정도로.

몰랐다고?

뭐, 별 수 없지.

<안내서> 주석 : 알다시피 지구는 우주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입이 딱 벌어질 만큼 구석에 처박힌 촌구석에 불과하다. 머나먼 옛날, 아직 베텔게우스가 전제 행성이던 시절, 처음으로 지구를 발견한 킹 조조조르지우스 6세는 깜짝 놀라며 “뭐 이런 초, 초, 초초, 초, 촌구석이 다 있어!“라고 외친 바 있다. 물론 그것은 조조조르지우스 6세의 말더듬증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그 이후로 한동안 베텔게우스인들은 지구를 가리켜 ‘초초초초초-촌구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Super’가 다섯 번 들어갈 만큼 촌구석이란 뜻이다. 문화의 전파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촌구석에서 태어난 것은, 당연히, 당신 잘못이 아니다.

꼼꼼한 독자라면 벌써 눈치 챘겠지만(그리고 나는 당신이 그런 독자가 아니길 바란다), 애덤스가 생전에 발표한 <안내서>는 모두 다섯 권이다. 그런데 혹시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인간의 손가락 역시 한 손에 다섯 개라는 사실을. 이미 말했듯 애덤스가 쓴 <안내서> 역시 다섯 권이다. 어떤가, 정말 놀라운 우연이 아닌가? 다시 말해 당신이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손가락을 하나씩 꼽는다면, 더 이상 꼽을 손가락이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책도 끝난다는 말이다. (만약 당신이 한 권으로 만들어진 합본을 읽는다면? 그냥 주먹을 쥐면 된다. 믿기 힘들겠지만, 결과는 같다.)

2.
조조조르지우스 6세도 ‘초’를 다섯 번 말하긴 했지만, 그것은 오늘 이야기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

3.
애덤스는 생전에 두 권의 ‘마지막’ <안내서>를 출간했다. 80년대 중반, 모든 소설가들의 로망처럼 편집자에 의해 호텔에 감금된 채 4권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를 쓴 애덤스는 ‘이것이 시리즈의 마지막’이라고 공언한다. 실제로 애덤스는 영적인 탐정 더크 젠틀리가 등장하는 코믹 소설인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와 《길고 어두운 영혼의 티타임》, 그리고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지구 최고의 에세이인 《마지막 기회라니?》 등을 쓰며 <안내서> 시리즈에는 작별을 고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짝수는 정이 없다는 훈훈한 술자리 농담처럼(아마 지구인의 손가락을 다섯 개로 만드신 그 분도 같은 농담을 들으셨던 거 같다) 애덤스는 1992년 <대체로 무해함>을 추가함으로써 총 다섯 권의 <안내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몇 권을 읽고 있고 앞으로 몇 권이 남았는지 독자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그리고 2001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더 이상의 추가 작업은 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안녕히, 그리고 <안내서>는 고마웠어요.

잠깐, 그런데 6이라며?

바로 여기가 이오인 콜퍼가 끼어드는 지점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유족과 친지들에 의하면 애덤스는 생전에 종종 여섯 번째 <안내서>이자 세 번째의 마지막 <안내서>를 쓸 생각이 있음을 넌지시 내비치곤 했다고 한다. 세상에, 우주적인 베스트셀러의 작가가 마지막이란 단어의 뜻도 제대로 몰랐다니! 아무려나. 그다지 큰 결점이라고 할 순 없지만 소개팅에서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퇴짜를 맞을 것이 분명한 고인의 사소한 무지를 기리며 유족들이 시리즈를 이어갈 작가를 물색하던 중 이오인 콜퍼가 손을 든 것이다.

저요! 저요! 저 여기 있어요!

글쓴이 주석 : 위키 백과가 인용하고 있는 영국의 미디어에 따르면 애덤스는 생전에 시리즈를 이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으며 “내가 조만간 여섯 번째 <안내서>를 쓰고야 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라는 식의 말을 하곤 했다고 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우주를 유영하던 <안내서>의 신호를 포착한 이오인 콜퍼가 엄지손가락을 들고, 정확히 말하자면 전자 서브-에서 신호 장치라고 해야겠지만, 유족들의 도움으로 <안내서>에 히치하이크 했다고. 요리사로 일하는 덴트라시스인들의 도움으로 보곤인들의 우주선에 히치하이크를 했던 아서 덴트와 포드 프리텍트처럼 말이다. 물론 그가 한 일은 단순한 히치하이크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안내서> 호의 새로운 선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누구 맘대로?

만약 당신이 언젠가 <안내서>를 읽은 적이 있다면, 손가락이 다섯 개밖에 없음을 원망하며 마지막 권을 덮은 기억이 생생하다면, 아마 이렇게 생각할 거다. 아니, 문학사에 존재하는 그 모든 졸렬한 실패들은 집어 치우고라도, ‘그’ 스티븐 스필버그조차 스탠리 큐브릭의 <A.I.>를 이어 만드는 일에는 실패했다고. 그런데 이 친구는 도대체 자기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나님?

<안내서> 주석 : 어사 마이너라는 행성에 있는 대단한 출판사들이 내놓은 모든 책들 중에서도 아마 최고로 훌륭한 책일 <안내서>에 대해 아쇼우비아에는 이런 격언이 전해진다. “<안내서>를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은 있다. 하지만 <안내서>를 읽다 만 사람은 없다.” 심지어 아쇼우비아를 비롯해 적지 않은 행성에서는 제각각인 손가락의 수를 다섯 개로 만드는 손가락 성형수술이 유행하며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모든 우주에서 한 권짜리 합본이 나오게 된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아쇼우비아에서 ‘하나님’은 ‘하나가 된 ’이라는 뜻으로 바로 한 권짜리 합본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사람, 경력이 제법 심상치 않다. 국내에도 적지 않은 책이 번역된 기성 작가인 동시에, <아르테미스 파울>이라는 독자적인 시리즈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지구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것. 아니, 그럼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아무리 그래도 더글러스 애덤스가 없는 <안내서>라니, 우울증이 없는 마빈처럼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잖아! 물론 <안내서> 시리즈의 광팬인 동시에 새로운 이동 조사원을 자처하는 콜퍼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는 여섯 번째 책의 서문을 통해 그와 같은 광팬들에게 말한다.

(당신은) 순전히 두뇌에 안개가 낀 것 같은 지루함 때문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검색창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입력해보기로 한다. 그러면 이 경솔한 타자질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

다섯 개의 결과는 하나같이 장문의 항목으로, 몇 시간에 걸친 비디오와 오디오 파일 들, 그리고 꽤나 유명한 배우들이 등장하는 재연 드라마 몇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항목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의 신장을 다시 저당 잡히라든가 포름랭글러의 길이를 늘이라든가 하는 광고들을 다 무시하고 계속 스크롤을 내려가다 보면, 아주 작은 글자체로 쓰인 다음과 같은 문장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읽어볼 만한 책은…… 아이콘을 이 링크에 대고 슬쩍 문질러보면, 연결된 오디오도 없고 하다못해 동호회 친구들한테 샌드위치를 쏘고 자기 방에서 찍은 학생 비디오조차 붙어 있지 않은, 그저 텍스트뿐인 부록이 나올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부록의 이야기다.

호오, 조촐한 부록이라. 제법 겸손하시군 그래. 다음 장을 넘겨보자. 이번에는 애덤스의 문장을 인용하며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다.

폭풍우는 이제 확실히 한풀 꺾였고, 마구잡이로 쳐대던 천둥은 아득한 산 너머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마치 논쟁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나서 이십 분쯤 지난 후에 “그런데 한 가지 더……” 하고 뒷북을 치는 사람처럼 말이다.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중에서)

그러고 보니 제목 자체가 <그런데 한 가지 더>란다. 그런데 한 가지 더라… 음, 사실 궁금하긴 하다. 자포드 비블브락스 만큼이나 정신이 나간 이 작가가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지 도무지 읽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것이다. 전지구가 하나가 된 이 스마트한 세상에서도 여전히 책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란 그런 법이다. 외롭고 쓸쓸하다. 외롭고 쓸쓸해서 읽고 싶고, 읽을수록 외롭고 쓸쓸하다…. 외로워서 읽는가 읽어서 외로운가 하는 그런 질문은 나에게 하지도 말라. 뭐, 어쨌거나 결국 한 권의 책일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 읽지 않는 것보다 읽는 것이 낫다.

말하자면 그것이 이오인 콜퍼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6》을 집으며 내가 한 생각이었다.

물론 단순한 독서가 아닌 서평을 쓸 책을 고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여기에는 치밀하고도 꼼꼼한 계산이 숨어있음을 고백해야겠다. 피타고라스가 살아서 돌아온다고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그런 계산… 이라고 하면 물론 거짓말이고. 실은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산수를 했을 뿐이다. 애덤스의 ‘원전’이 합본을 기준으로 1235쪽인 것에 반해, 이오인 콜퍼 쪽은 고작해야 493쪽에 불과(!)한 것이다. 어쨌거나 서평을 쓰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과거에 읽었던 책도 마찬가지다. 잠깐만, 마감이 임박한 원고가 몇 개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만나야 할 사람들도 있고, 참, 빨래랑 설거지도 밀려 있잖아… 내가 애덤스와 그의 <안내서>를 좋아하긴 하지만… 비용 대비 금액을 생각, 아니 그게 아니라… 사실 고작해야 서평일 뿐이고… 그렇게 두꺼운 책을 고른다는 건, 나도 뭐 땅 파서 장사하는 거 아니고…

글쓴이 주석 : 친애하는 나의 여자친구는 불을 뿜는 발할라의 비행 설치류라도 한 방에 보내버릴 만한 무시무시한 두께의 <안내서> 합본을 두고 ‘밤마다 몰래 꺼내 주문을 외워야 할 것 같은 책’이라고 평한 바 있다. [판타지아]에서 미키 마우스가 보는 그런 마법서 말이다!

말하자면 어른의 사정. 그러니 제정신이 박힌 필자라면 콜퍼 쪽을 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보시다시피(혹은 의외로) 내 머리에도 소위 말하는 제정신™(자잘한 버그들과 불안정함으로 인해 최악의 버전이라고 평가받는 1.81beta 버전)이란 것이 박혀있고, 그대로 했다. 아무리 애덤스와 책세상 출판사를 친애한다 한들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안내서> 주석 : ‘친애하다’라는 단어는 우주 곳곳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단어이지만 물론 예외는 존재한다. 모든 단어를 줄여 말하기 좋아하는 이존길외(‘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길들의 외침’ 또는 ‘이곳에 존재하라, 길고 외롭게’의 약자라고 알려져 왔지만, 최근에는 맥시메갈론 대학의 대체역사학 교수에 의해 제기된 ‘이름이 존나 길면 외우기 짱나염’의 약자라는 설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행성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친한 척 하지 마라, 애송이들아”의 줄임말이다. 모든 언어를 자동으로 통역해주는 바벨 피시조차 이존길외의 줄임말에는 두 지느러미를 다 들어버린 사정으로, 그것은 결국 제153657차 우주대전의 원인(“친애하는 이존길외 여러분, 저희는 평화의 사절로…” “뭐? 선전포고냐?!”)이 됨과 동시에 제557차 우주평화조약의 극적인 계기(“친애하는 우주의 동지들에게”로 시작하는 이존길외의 성명서. 여기서 동지는 바벨 피시가 놓친 또 하나의 줄임말로 “동네에서 지랄하는 녀석들”의 약자)가 되었다. 이를 두고 잘난 척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저 모든 우주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글쓴이 주석 : 적어도 이 글에서 쓰이고 있는 ‘친애하다’라는 단어의 뜻은 당신이 알고 있는 그것이 맞다. 어떤 출판사의 책을 70권 가량 책장에 꽂아두고 있다면, 게다가 그 중 많은 책이 공짜로 받은 책이라면, 더군다나 이런 글을 쓰고도 고료를 받을 거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어쩌면 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긴 하지만…) 그 출판사를 친애하지 않기란 어려운 법이다. 여자친구에 대해서라면… 잠깐,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그런 얄팍한 계산이 철저하게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 나의 제정신™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놀랄 일은 아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떠올려 보라. 그의 머리에는 당시 놀랍도록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가장 최신 버전의 제정신™이 박혀있지 않았던가! (아이히만이라는 이름이 너무 쌩뚱 맞게 느껴진다면, 당신이 다니는 회사의 팀장이나 과장 등 당신의 상사들 중 아무 얼굴이나 떠올려 보라. 결국 같은 이야기다.) 그것이 단순한 오작동이냐 근본적인 결함이냐를 두고 여러 논쟁이 있었지만, 아무려나,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았다.

<안내서> 주석 : 사실 그것은 굉장히 오래된 문제이며, 역사상 모든 쁘레따 뽀르떼 학자들이 한 번 이상은 소리 높여 주장했고, 이내 멱살을 잡고 싸우게 만든 문제이다. 지구 시간으로 약 2천여 년 전, “한 남자가 기분 전환도 할 겸 이제는 사람들끼리 좀 잘해주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했다는 이유로 나무에 못 박힌” 이후로 문제는 여전히 답보 상태이지만, 좀 더 극단적인 이들은 인류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 버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후자의 사람들 중 일부는 시끄러운 확성기를 들고 일종의 사자성어들이 쓰인 팻말을 든 채 공공장소를 돌며, 종말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소리 높여 외침으로써 몸소 그 사실을 증명하려 노력하고 있다. 운 나쁘게 대한민국을 지나게 된 히치하이커은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는데, 그들의 외침이 귓속의 바벨 피시를 자극해 히치하이커로 하여금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방언을 내뱉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러 평행우주 속에서 지구는 보고인과 그레불론인 등 다양한 종족들에 의해 종말을 맞았고, 맞고 있으며, 맞을 것이다. 이는 이미 책에 쓰여 있는, 한마디로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이야기다. 과거의 독서를 바탕으로 곧장 콜퍼의 책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무언가 찜찜한 기분에,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무엇보다 애덤스의 책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결국 다시 한 번 1235쪽짜리 합본을 잡았다는, 눈물이 쏙 빠지도록 웃으며 읽고 그러다 지치면 그것을 베고 잤다는, 시시각각 마감이 다가오는 다른 원고들을 모두 나 몰라라했다는, 결과적으로 이 글 또한 마감을 넘겨버렸다는, 방치해둔 빨래와 접시들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는, 그리고… 아니, 눈물이 날 것 같으니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자. 아무튼 애덤스에서 콜퍼에 이르는 책을 다시 한 번 읽었고, 이 글을 쓰고 있으며 그렇게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이야기는 잊어 달라.

그렇지만 여전히 곤란한 문제들이 남아 있다.

도대체 <안내서>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잠시 <안내서>의 스토리를 되짚어 보자. 영국의 한 마을에 아서 덴트라는 인물이 살고 있었고, 어느 평범한 목요일 아침에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를 한 대의 불도저와 몇 명의 인부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들은 구청의 결정에 따라 우회로를 내기 위해 아서의 집을 밀어버리려고 하고 있었고, 황당한 아서는 목욕 가운을 입은 채 불도저 앞에 누워 시위 아닌 시위를 하게 되었고, 그때 나타난 아서의 친구 포드 프리펙트가 공사 감독관을 교묘한 말장난으로 속여 아서 대신 불도저 앞에 눕게 만든 후 아서를 술집으로 데려갔고, 다짜고짜 쓴 맥주 육 파인트를 마시게 하더니 세상이 곧 끝장날 거란 사실을 덤덤하게 알렸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이 실은 베텔게우스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고백하는데 아서는 단지 목요일이 싫을 뿐이고, 때마침 지구를 향해 노란색 우주선이 몰려오고 있었고, 그들은 말하자면 우주의 무자비한 공무원으로 초공간 우회로를 만들기 위해 지구를 박살내려는 임무를 갖고 있었고, 결국 그들은 무지비한 공무원답게 훌륭히 그 일을 해냈고, 주인공인 아서와 포드는 책이 시작되자마자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포드의 전자 서브-에서 신호 장치로 보고인의 우주선에 극적으로 히치하이크를 할 수 있었고, 하지만 이내 보고인들에게 잡혀 버렸고, 보고인 선장의 끔찍한 시낭송을 들어야 하는 오디세우스 류의 형벌에 처해진 후 우주로 추방당했고,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자포드 비블브락스의 ‘순수한 마음’ 호에 또다시 히치하이크 하는 데 성공했고, 알고 보니 자포드와 포드는 사촌지간이었고, 그는 우주 대통령인 주제에 ‘순수한 마음’ 호를 훔쳐 도주하는 중이었으며, 그곳에는 트릴리언이라는 이름의 지구인 여성 또한 타고 있었는데 그녀는 언젠가 파티에서 아서가 꼬시려고 시도한 여성이었고, 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와 함께 뒷마당으로 나갔는데 그게 바로 자포드였단 말이고, 결국 그들은 ‘진짜 인간 성격’을 지닌 탓에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버린 최첨단 안드로이드 마빈과 함께 우주를 누비며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관한 궁극적인 질문’을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는데, 원래부터 그걸 찾으려고 한 여행은 아니었고 어쨌든 그렇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질문을 얻기 위해 계산을 돌리는 행성 규모의 바이오-컴퓨터가 바로 지구였고, 인간은 일종의 반도체와 같은 컴퓨터의 일부분이었고, 그것을 조종하는 것은 쥐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들은 사실 지구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존재로 이등은 돌고래였고, 그런데… 잠깐만, 숨 좀 돌리고… 거기 누구 물 좀 가진 사람 없어요?

4.
자, 여기까지가 대략 <안내서>의 1권에 해당되는 200쪽까지의 이야기다. 그리고 1권이 가장, 어쩌면 유일하게 스토리 요약이 가능한 부분인 것이다. 이유는? 결국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소설 자체가, 코믹-SF-소설이라는 외향에도 불구하고, 실은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관한 궁극적인 질문’을 찾는 여정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결국은 끝장날 수밖에 없는 지구의 운명을 바꿀 방법 또한 찾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지구는 멸망하고, 멸망하고, 멸망하고, 멸망하고 마침내 다시 멸망한다. 그런 이야기다.


<안내서> 주석 :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관한 궁극적인 대답은 이미 존재한다. 그것은 두 자리의 숫자, 즉 ‘42’다. 다만 우리들은 그것에 대한 올바른 질문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안내서>는 어쨌거나 그 외향에 걸맞도록 끝내주게 웃기는 책이니까. 가히 우주적이라고 할 만한 농담으로 가득한 <안내서>는 신과 인간, 현대문명과 날씨, 숨 가쁜 유행과 잃어버린 꿈과 날씨, 불만과 더 큰 불만만을 선사하는 우리들의 직업과 오직 공허 그 자체로만 채워진 공허, 그밖에도 스포츠와 음식과 심리학과 점성술과 정신분석학과 술과 자동차와 파티와 택시와 10대의 일탈과 자유 기고가의 빌어먹을 삶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관한 프루디한 농담들을 던진다. 애덤스가 건드리고 있는 목록에서 드러나듯, 이것들은 물론 단순한 농담 따먹기로 그치지 않는다. 역자들은 후기를 통해 <안내서>의 주된 정서 세 가지를 이렇게 정리한다.

(1)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나 대단할 거라 기대하는 모든 것들의 엄청난 하찮음
(2) 천지 만물을 추동하는 근본 원리로서의 부조리
(3) 거대한 분노도 없고 쓰라린 원한도 없이 결국은 ‘그런들 어떠하리’라는 체념 혹은 ‘거 참 재미있군’이라는 냉소적인 달관

그리하여 끝내주는 농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구는 끝장나고, 끝장나고, 끝장나고, 끝장나며, 끝장난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세상을 자꾸만 끝장내는 이유에 대해 애덤스는 “그냥, 당시 세상에 좀 불만이 있어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어찌나 애덤스다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안내서>를 보는 내내 웃음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또 다른, 복잡한 감정들을 느낄 수도 있다. 이를테면 ○○나 ●● 혹은 ◇◇ 같은, 또는 다른 여러 감정들을. 그게 뭐냐고? 글쎄, 솔직히 당신의 감정을 내가 무슨 수로 알겠는가? 한번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라.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내 기분을 당신을 알 수 있는가?

5.

그런데 한 가지 더

자, 이제 콜퍼의 <그런데 한 가지 더>를 이야기할 차례다. 어느새 글은 이토록 걷잡을 수 없이 길어졌고, 나는 별 수 없는 아저씨이며, 아저씨의 사정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으므로 짧게 쓰겠다.

콜퍼 또한 재미있는 농담을 구사한다. 하지만 그 농담은 종종 실패하며 가끔은 빨간 펜을 들고 싶게 하기도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꼼꼼하며 또한 인내심 많은 독자가 또한 그러하듯이(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나는 당신이 그런 독자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인물들은 애덤스가 구축한 캐릭터에서 벗어나 시종일관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지껄이기를 멈추지 않는다. 조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뭐, 그런 고생을 하며 우주를 돌아다녔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콜퍼의 책이 수준이하라는 말은 아니다. 일단 농담의 질을 놓고 애덤스와 일대 일로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 비록 마지막이라는 단어의 뜻은 제대로 몰랐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우주적인 작가가 아닌가? 또한 콜퍼의 농담에도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과 종교에 대한 농담이다. 실제로 <그런데 한 가지 더>의 많은 부분은 종교에 대한 농담에 할애되어 있다.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토르와 자포드, 그리고 새로운 지구를 둘러싼 이야기는 웃음과 냉소, 풍자를 잃지 않는다.

캐릭터의 성격 변화에 대해서라면, 글쎄, 위키 백과가 인용하고 있는 애덤스의 말이 대답이 되지 않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종종 내게 말하곤 해. <대체로 무해함>(다섯 번째 책)은 너무 암울했다고. 틀린 말은 아니야. 그래, 그건 암울한 책이지. 나도 좀 더 밝게 시리즈를 끝내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그리고 다섯이라는 숫자는 사실 좀 별로지. 여섯이 좀 더 좋은 숫자란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애덤스의 <안내서>를 읽은 당신이라면(설마 곧바로 콜퍼의 책을 읽으려는 자포드만큼이나 무모한 독자는 없을 거라고 믿는다) 콜퍼의 후속편을 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은 아마 당신처럼, 아니 당신보다 더, 애덤스가 만들어낸 우주를 사랑하는 한 작가를 만날 수 있고, 비록 조금 부족하지만, 조금 덜 웃기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움직이는 아서와 포드와 자포드와 트릴리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보고인들을 비롯한 기타 다른 조연들도 물론 거기에 있다. (애석하게도 마빈은 없다. 아마 어딘가 구석진 별에 처박힌 채 자신의 처지를 저주하며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려 반경 2km 이내의 모든 생명체들을 질리게 만들고 있겠지.)

말하자면 이것은 더글러스 애덤스와 그의 히치하이커들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추모 파티인 셈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곳에서 한 잔 마시며 추억을 즐긴다고 해도 세상이 끝장나는 일은 없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이 무슨 일을 하건 끝장날 거라고 해야겠지만.

일어나는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6.
그런데 한 가지 더.

아직 내겐 해명해야 할 사소한 문제가 남아있다.

나는 위에서 손가락과 <안내서>의 숫자를 비교하며 다섯이라는 숫자의 완벽함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반면 바로 위의 단락에서는 “다섯이라는 숫자는 사실 좀 별로지. 여섯이 좀 더 좋은 숫자란 말이야”라던 애덤스의 말을 인용했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손가락과 <안내서>의 행복한 일치는 어디로 사라진 건가? 이제 6권을 읽기 위해서는 다른 쪽 손가락을, 아니면 발가락이라도 써야 한다는 건가?

Don't Panic!

해답은 간단하다.

당신은 다른 쪽 손을 혹은 발을 그 외의 다른 무엇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저 꼭 쥐었던 다섯 손가락 중에서 단 하나의 손가락을 다시 펴기만 하면 된다. 바로 당신의 엄지손가락을.

물론 그것은 히치하이킹을 뜻하는 만국, 아니 우주 공통의 신체 언어인 것이다. 혹시 아는가. 이 초초초초초-촌구석에도 언젠가는 찾아올 최후의 심판일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당신의 행운을 빈다.
그리고
겁먹지 말기를. (Don't Pa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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