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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생태’의 변화에 대한 독일 정치학자의 관찰

책세상 2012. 3. 22. 13:43

헤어프리트 뮌클러의《새로운 전쟁》

공진성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은 1992년에 출간한 자신의 저서《테크노폴리》(김 균 옮김, 궁리, 2005)에서 기술의 영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기술적 변화는 단순히 더하느냐 혹은 빼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생태학적인 문제이다. 여기서 ‘생태학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환경학자들이 사용하는 개념 그대로이다. 하나의 중대한 변화는 총체적 변화를 수반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만일 어떤 자연 서식처에서 특정 곤충의 유충을 제거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은 동일한 환경에서 단순히 유충만 빠진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환경을 의미하는 것이고, 전과는 다른 생존 조건이 새롭게 구성된 것을 의미한다. 만일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유충을 더한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바로 매체생태(media ecology)의 작동 방식이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에 없었던 무엇인가를 단순히 더하거나 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 것이다. …… 모든 기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사회제도이다. 이 사회제도들의 ― 존재 이유는 말할 것도 없고 ― 조직에는 기술이 조장한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옛 기술이 새 기술로부터 공격받을 때, 사회제도 역시 위협받게 된다. 사회제도가 위협받을 때, 문화는 위기에 처한다.
―닐 포스트먼, 《테크노폴리》, 30~31쪽

제가 글의 서두에 포스트먼의 글을 인용한 것은 기술과 매체생태의 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이 우리가 전쟁의 변화에 대한 뮌클러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뮌클러의《새로운 전쟁》에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것은 말하자면 ‘전쟁생태(war ecology)’의 변화에 대한 그의 관찰과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뮌클러 자신은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저는 이 개념이 전쟁에 대한 그의 생각을,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전쟁의 변화를 흥미롭게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전쟁(the new wars)’이라는 표현은 1999년에 영국의 정치학자 메리 캘도어(Mary Kaldor)가 자신의 저서《새로운 전쟁과 낡은 전쟁》(유강은 옮김, 그린비, 2010)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새로움’의 내용은 이미 1991년에 이스라엘의 전쟁사학자 마르틴 판 크레펠트(Martin van Creveld)가 자신의 저서 The Transformation of War(전쟁의 변형)에서 ‘미래의 전쟁(the future war)’이라는 제목 아래 개괄적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전쟁이 ‘새롭게’ ‘변형(transform)’하고 있다는 데에 독일의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Herfried Münkler)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뮌클러는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의 전쟁 개념이 과거의 국가간전쟁의 시대에만 유효할 뿐, 미래의 (새로운) 전쟁에는 유효하지 않다는 판 크레펠트의 판단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판단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주장하는 전쟁의 두 가지 특징 가운데 ‘도구성(Instrumentalität)’에만 주목하고 ‘가변성(Variabilität)’에는 주목하지 않은 결과라고 비판합니다. 클라우제비츠에 의하면, 그리고 뮌클러에 의하면, 전쟁은 그저 정치의 수단만이 아니라, 또한 “진정한 카멜레온(ein wahres Chamäleon)”입니다. 뮌클러는 새로운 전쟁의 ‘새로움’이 전쟁이 정치의 도구라는 ‘사실의 변화’에 있지 않고, 전쟁이 정치의 도구가 되는 ‘방식의 변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뮌클러에 의하면, 전쟁에 대한 클라우제비츠의 분석에서 우리가 오히려 주목해야 할 점은 다름 아닌 전쟁의 도구성과 가변성이 맺는 긴장관계이며, 이 점에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뮌클러의《새로운 전쟁》은 전쟁이라는 이 ‘카멜레온’의 변색과정에 대한 분석입니다. 그리고 이 분석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기술의 발명과 도입이 가져온 ‘전쟁생태’의 변화에 대한 분석이기도 합니다.






뮌클러는《새로운 전쟁》에서 긴 전쟁사의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예외적인 시기로 보이는 짧은 국가간 대칭적 전쟁(이른바 ‘낡은 전쟁’)의 시대를 가운데에 두고 그 전후의 ‘전쟁생태’의 변화를 관찰하고 분석합니다. 이때 새로운 전쟁의 중요한 대조군으로서 언급되는 것은 1618년과 1648년의 사이에 유럽에서 일어난 이른바 ‘삼십년전쟁’입니다.  뮌클러는 새로운 전쟁의 특징적 현상들로 언급되는 것과 유사한 모습들을 삼십년전쟁 속에서 찾아내며 흥미롭게 대조해 보여줍니다. (이에 대해서는 《새로운 전쟁》의 2장을 참조하십시오.) 전쟁생태의 변화에 중요하게 작용한 두 가지 요소는 (새롭게 개발되어 전쟁에 도입되는) 기술과 (그것과 유관하게 혹은 무관하게 일어난 전쟁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행위자의 창의적 학습능력입니다. 행위자의 학습능력은 전술과 전략으로 표현되고, 기술은 새로운 무기로 표현됩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무기가 반드시 최근에 만들어진 무기를 뜻할 필요는 없습니다. 환경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 무기도 ‘새로운’ 무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일어난 무기기술상의 혁신과 전술상의 혁명은 군대라고 하는 새로운 사회제도를 만들었고, 그 제도는 일정한 세계관과 문화를 반영했습니다. 군인에게 요구되는 엄격한 규율과 국가간전쟁에 부과되는 전시국제법은 바로 그 세계관과 문화의 표현입니다. (이에 대해서는《새로운 전쟁》의 3장을 참조하십시오.) 총포의 도입과 새로운 전술대형의 발명은 중세의 기사제도와 용병제도를, 그리고 그 제도에 반영되어 있던 명예규약과 상업적 계약 정신을 점차 허물어뜨렸고, 그것들을 국유화한 군대 제도와 군사법 등으로 대체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 근대적 전쟁 세계관과 문화는 다시금 해체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새로운 전쟁들에서 국제법은 쉽게 무시되고 군인에게 요구되었던 엄격한 규율은 이 전쟁의 전사들에게 그리 존중되지 않습니다. 근대적 전쟁 세계관과 문화를 반영하고 있었던 군대라는 사회제도가 무너진 결과입니다. (후진국에서 그 붕괴가 야만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선진국에서 그 붕괴는 탈영웅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취업준비학교’나 ‘영어교습소’로 전락해가려 하고 있는 한국군대의 모습을 생각해보십시오.) 전쟁의 국가독점이 무너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칼라시니코프 소총과 같은) ‘새로운’ 무기의 도입과 (소년병의 활용, ‘인종청소’, 지구적 지하 경제와의 결합, 외부의 인도적 지원의 활용 등을 통해 전쟁비용을 외부화하는) 행위자의 창조적 학습능력의 발휘 덕분에 전쟁이 다시 저렴해진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 또한 전쟁에 다시금 (법률적 범주가 아닌) 도덕적 범주가 ‘정당한 전쟁(just war)’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되고, ‘부당한’ 방식으로 싸우는 적에 효율적으로 맞서기 위해 무인전투기와 원격전쟁기술이 도입됩니다. 그리고 다시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 악에 대한 ‘성전(지하드)’이 선포되고, ‘겁쟁이’ 서구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 ‘영웅적인’ 자살테러가 감행됩니다.


불타는 세계무역센터(2001년 9월 11일)


전쟁을 생태학적으로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전쟁생태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선적으로 그것은 전쟁을 유기적 전체로서 또는 유기적 전체 속에서 파악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오늘날 서구 세계의 소비자가 별 생각 없이 그저 가격만을 따지며 구매하는 보석과 상품이 다른 세계의 전사들의 전쟁 자금이 되고, 우리가 착한 마음으로 돈을 모으고 물품을 모아 전쟁지역에 보내는 구호물자가 전쟁보급품이 되며, 끊임없이 새로운 소식을 갈구하는 우리의 미디어산업과 발달한 미디어기술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전쟁의 행위자들로 하여금 미디어의 주목을 끌기 위해 더욱 더 비참하고 잔혹한 상황을 연출하게끔 한다는 것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우리를 매우 불편하게 만듭니다. 다시 한 번 순수한 마음으로 이른바 전쟁과 무관함이 인증된 보석과 상품을 사면 우리는 전쟁과 무관해질까요? 전쟁의 희생자들과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반대하는 것이 오히려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기여할까요?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끄고 전쟁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우리의 인식세계 저편에서 벌어지는 비극이 정말 끝나게 될까요? 우리는 하나의 유기적 전체인 전쟁이 만들어내는 딜레마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뮌클러의《새로운 전쟁》이 별다른 ‘해법’의 제시 없이 끝을 맺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쟁생태에 대한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이해 없이는 우리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결정이 의도하지 않은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키게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뮌클러는 새로운 전쟁을 바라보는 유럽과 미국의 시각이 기본적으로 상이함을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유럽의 방식이 대칭적 정치를 위한 필수불가결의 최소 조건을 복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면, 미국의 방식은 직접 비대칭화의 경로를 따르는 것이다.
―헤어프리트 뮌클러, 《새로운 전쟁》, 281쪽

여기에서 ‘대칭적 정치를 위한 필수불가결의 최소 조건’이 반드시 ‘국가성’의 복원이나 건설을 의미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국가주권의 약화 또는 그 속성의 변화는 이미 여러 학자들에 의해 오래 전부터 관찰되어왔고 주장되어왔습니다. 그렇다면 그 ‘최소 조건’은 아마도 탈국민국가적 정치적 맥락의 형성이어야 할 것입니다. 정치적 맥락은 다시금 전쟁을 정치의 수단으로 만드는 데에, 그럼으로써 다시금 전쟁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데에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관을 옹호하며 뮌클러는 오늘날 전쟁이, 설령 정치의 국민국가적 형태에서는 벗어났을지 모르지만, 정치 일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데에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전쟁이 새로운 정치적 맥락과 결합하는 것이 가능하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뮌클러가 보기에 오히려 문제는 다른 데에 있습니다.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 모를 이 새로운 탈국민국가적 정치적 맥락의 형성을 주도하기에 유럽의 힘은 너무 약하고, 유일하게 군사적 힘을 가진 미국은 그럴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곧 번역ㆍ출간될 뮌클러의《제국들》의 6장을 참조하십시오.) 미국의 대응 방식은 새로운 전쟁의 주요 행위자들과 마찬가지로 (도덕의 차원에서나 전략의 차원에서) 직접 비대칭화의 경로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뮌클러는 이런 미국의 방식에 다음과 같이 커다란 회의를 표명합니다:

이와 함께 국가들은 각자의 평화 전략과 관련해 악순환에 빠졌다. 왜냐하면 비대칭성이 군사 전략의 측면에서나 정치적 관념의 측면에서, 그리고 또한 국제법적 정당성의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 국가들을 안전함의 허구와 전능함의 환상에 쉽게 빠져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대칭성이 사태의 전개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고 새로운 조건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국가들의 능력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반면에 비대칭성은 열세에 처한 국가들로 하여금 정치의 영역에서 폭력 사용의 형태를 끊임없이 바꾸는 창조성을 발휘하도록 강제한다.
같은 책, 283쪽 주47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학습을 ‘봉쇄’하게 될, 그럼으로써 새로운 전쟁 환경에 자신을 적응시키지 못하게 될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전쟁과 관련하여 뮌클러는 정치학자답게 여전히 정치가 중요함을, 정치에서 힘과 권력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그리고 정치적 선택에 내포된 딜레마를 정치인들과 안보정책 결정자들이 언제나 직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새로운 전쟁》의 역자이신 공진성 선생님께서 써주신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

필자 소개 | 공진성
1996년에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1998년에 동대학원에서 현대 정치철학의 해석학적 전환에 관한 논문으로 정치학 석사학위를, 2006년에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에서 스피노자의 정치사상에 관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9월부터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셸던 월린의 《정치와 비전》(제1권, 2007)을 강정인 교수와 함께 한국어로 옮겼고, 존 로크의 《관용에 관한 편지》(2008)를 라틴어에서 한국어로 옮겼다. 책세상 ‘비타 악티바’ 시리즈 《폭력》(2009)과 《테러》(2010)를 썼으며, 《서양 고대ㆍ중세 정치사상사》(2011)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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