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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하게 타오르는 여름, 그리고 여행 본문

책세상 책읽기/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끈끈하게 타오르는 여름, 그리고 여행

책세상 2012.08.10 09:42
너의 여름은 어떠니?
ㅡ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유난히 덥다. 지난여름에는 비가 우산을 때리듯이 쏟아지던 기억이 여러 번 있다. 또 그 전 여름에는 시간을 몇 주 동안의 여행에 던져두었던 기억이. 여름은 늘 때가 되면 찾아왔겠지만, 올 때마다 성격도 다르고 또 그와 만나는 이에 따라 다양한 색조를 남긴다. 어떤 색을 만드느냐는 여름의 방문과 우리와의 화학 작용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너의 여름은 어떠니?’ 그리고 나의 여름은? 밀어두었던 이런 생각들을 불러오게 된 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를 만나면서이다.

특정한 영화나 문학가의 흔적을 영감 삼아 떠나는 여행은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자그마치, 니체라는 철학자의 삶을 따라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떠나는 니체 전문가의 ‘철학적 기행문’이다.(!) 목차를 훑어보니 내가 거쳤던 곳이 세 곳. 낯선 여행지에서 저자는 니체의 흔적을 그의 사상과 연관 지으며 되새김질해, ‘나’를 찾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라고 마음을 들쑤신다.

이제까지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해왔는가? 내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가? 의지만으로 살기엔 상황의 압박이 너무 크다고 말하면서 이런 질문을 피하진 않았는가? ‘너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니체가 1889년 정신적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놓지 않았던 질문이다.
—이진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61쪽.

그대는 지금까지 참으로 무엇을 사랑했는가? 무엇이 그대의 영혼을 매혹했는가, 무엇이 영혼을 지배하고 또 동시에 즐겁게 했는가? 젊은 영혼이여, 이 물음으로써 인생을 돌아보라.
―니체, 위의 책, 62쪽에서 재인용.

니체와 함께 던지는 이 질문들은 거대한 만큼 근본적이어서 삶의 순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이 물음에 답하려고 노력하고, 답에 가까이 갈 때 삶은 니체가 말한 것처럼 유일무이한 예술 작품이 된다. 이처럼 당연히 생각해야 하는 질문이지만 당연해서 잊기 쉬운 문제들은 여행이라는 매력적인 방법을 통해 환기된다. 그리고 저자가 니체에게서 배운 ‘정주 여행’의 방법은 자연스럽게 내가 ‘나’에게로 이끌리게 한다. 책을 읽은 뒤 가장 가보고 싶어진 곳은 니체가 정신을 놓기 전까지 일곱 번이나 방문했다는 질스마리아였다. 질스마리아는 걷기 좋고 생각하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니체는 고독, 글쓰기, 산책, 고통을 반복해 겪었다.

질스마리아 ⓒWerner Kast
방랑자는 정작 일주 여행을 하지 않는다. 정주 여행을 한다. 그 지방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 지방의 풍토를 느끼고, 그 지방의 삶에 밴 문화적 정취를 느끼고 나서야 다른 곳으로 옮긴다. 니체가 한 지역에 적어도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머물렀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니체처럼 세 달이나 머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한 주 동안 한곳에 머물면서 그의 차라투스트라 사상을 느껴볼 참이다.
―이진우, 위의 책, 185쪽.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걸으며 사색하는 여행을 엿보면서 내 안에 남은 것은 이 책의 뼈대인 니체의 사상과 문제의식이었다. 곳곳에서 거취하며 고통 속에서 사색한 니체가 결국 말하려 한 것은 영원회귀 사상을 통한 생의 ‘긍정’이었다. 영원회귀 사상이란 “우리의 삶, 지구의 생명, 모든 생성과 죽음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불가역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반복된다는”(149쪽) 것이다. 단선적 시간관에서는 생성된 존재를 죽음을 향해 흘러가는 것이라고 보는 데 반해, 니체는 영원회귀 사상을 통해 운명 속에서의 자유 의지를 강조하고 존재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한다. 삶이 죽음으로 흘러가 소멸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생성으로 돌아가고, 그 과정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사유는 삶에 특정한 목적을 세우는 평범한 습관이나 죽음의 인식에서 오는 허무의 감정을 잊게 한다. 끝이 없는 삶은 그 자체가 목적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이렇게 니체는 삶을 무한 긍정한다. 그리고 이 같은 시각은 삶을 새롭게 바라보며 순간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나의 모습을 창조해낸다.

질스마리아 BlueVoter
뒤로 나 있는 이 긴 골목길. 그 길은 영원으로 통한다. 그리고 저 밖으로 나 있는 긴 골목길. 그것은 또 다른 영원이다. 이들 두 길은 서로 모순이 된다. 그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리고 여기, 바로 이 성문에서 그들은 만난다. 그 위에 이름이 씌어 있으니 ‘순간’이 바로 그것이다.
―니체, 위의 책, 151쪽에서 재인용.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이 만나는 곳이 지금 이 순간이며 또 모든 순간이 회귀한다는 사실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 영원의 가치와 품위를 부여한다. 우리는 행위를 하면서 이렇게 물어야 한다. 그것은 정말 네가 수없이 반복해서 하기를 원하는 것인가?
―이진우, 위의 책, 151쪽.

직선적 시간관에서 볼 때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삼분법을 따라 흐른다. 이렇게 삼분된 시간은 인간의 내면에서 연속성을 지니며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니체의 시간관에서 시간은 과거라는 영원과 미래라는 영원이 서로 닿게 되는 ‘순간’이 중심이 된다. 순간이 중심이 되는 시간 속에서 ‘지금, 여기’는 중요하다. 수없이 반복되는 ‘순간’을 생각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삶을 단순히 흘러가게 놓아둘 수 없다. 그렇게 순간이 ‘나’를 깨울 때, 그 순간의 시간은 자신만의 실존적이고 고유한 시간을 선취하며 삶은 예술로 승화된다. 예술 작품과도 같은 삶을 창조하는 자는 바로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 자신이다. 지난 여행 사진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또 니체를 제대로 읽은 후에 다시 어느 곳으로라도 떠나야겠다는 의지를 빗어낸 이 책을 덮으며, 지금 순간에는 이 부분을 되뇌기로 한다. 그리고 팔월이 끈끈하게 타오를수록 더욱 또렷하게 내게 질문하자고 다짐한다. 그래야 너의 여름과도 만날 수 있을 테니.

어쩌면 나의 머리는 다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을 겁니다. 이 생각들로 인해 나는 매일 열 번이나 내게 소리쳤습니다. 내겐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있다!(이것이 내가 용기를 내는 방식입니다.)
―니체, 위의 책, 217쪽에서 재인용.

_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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