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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산다는 것 본문

책세상 이야기/편집자 분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산다는 것

책세상 2012.09.06 10:39
세상을 물들이는 사람에 대하여

인간을 네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고 했던가. 환경에 물드는 사람, 환경에 물들지 않기 위해 그 환경을 멀리하는 사람, 환경에 물들지 않는 사람, 그리고 그 환경을 물들여버리는 사람.

20세기의 가장 비참하고 참혹했던 환경은 ‘아우슈비츠’였을 것이다. “가스실, 화장터, 대학살. 그 모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죽음의 수용소에서>, 34쪽) 그곳 수감자들의 평균 생존 기간은 3개월이었다고 한다. “늦든 빠르든 결국에는 자포자기를 함으로써 수감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근본적으로 암울한”(<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 147쪽) 환경. 많은 수감자들이, 가스실에 보내지지 않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그 환경에 물들어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아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했던 이들이 있다. 그중 두 사람을 떠올려본다. 아우슈비츠 생존자 빅토르 프랑클과 프리모 레비.

언젠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선물 받아 읽은 적이 있다. “그렇게 순식간에 우리의 여인들, 부모들, 자식들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도 작별인사를 할 수 없었다……그 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것이 인간인가>, 24쪽) 레비는 그 참혹했던 상황을 담담히 써 내려가면서 인간의 정신, 인간의 의미를 묻고 있었다. 하지만 그 책을 읽은 후에, 책장에 꽂혀 있던 빅토르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차마 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프랑클은 그토록 사랑하던 어머니를, 아버지를, 형을, 그리고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 중 마지막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던 아내 틸리를 모두 수용소에서 잃었다. 혼자 살아남아 빈으로 돌아온 후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썼다.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이 책에서 아우슈비츠를 포함한 네 곳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참혹한 체험과 더불어 살아남은 이들이 겪게 되는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이야기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그것을 극복하고 더욱 치열하게, 더욱 보람 있게 삶을 살게 된다고 말했다.

이 이인(異人)을 그의 서른한 번째 책,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에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운이 좋았던 날들에 대해 감사하고 그날을 기억하여 기념일로 정하고 축하할 필요가 있다.”(<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 37쪽) 그는 자신의 마지막 저작인 이 책에서 자신을 살게 한 것들과 살게 해준 이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비롯한 서른 권의 저작 어디에도 쓰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비극적인 한 세기를 고통스럽게 그러나 낙관적으로 살아온 그의 회상 곳곳에서 그 어떤 환경도 그 어떤 사람도 물들여버리는 인간 정신의 힘을 발견한다.

노년의 빅토르 프랑클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 (188쪽)

그러고 보니 아우슈비츠를 겪어낸 두 인물의 생의 마지막이 사뭇 다르다. 레비는 1987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프랑클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아흔 번째 생일에 맞춰 자신의 회상록을 출간한 후 1997년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 ―빅토르 프랑클 회상록


빅토르 E. 프랑클 지음 | 박현용 옮김

세상이라는 '수용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급증하는 자살률, 정체 모를 불안과 온갖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는 현대인.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20세기 유럽에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죽음의 수용소가 있었다면, 21세기는 이 세계 자체가 마치 죽음의 수용소인 양 우리 삶을 죄어온다. 너도나도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이 고통스러운 현실에 낙담하고 좌절하며 수용소에 삶을 저당 잡힌다.

아우슈비츠 비극의 산증인이자 독자적인 심리치료법 로고테라피의 창시자, 빅토르 프랑클. 그는 1905년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97년 빈에서 생을 마감한, 20세기 유럽사의 한복판을 관통해온 인물이다.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는 빅토르 프랑클이 90세 되던 해에 출간한 회고록으로 '자신이 온 몸으로 겪고 견디어낸, 그리고 필생의 업적을 통해 만들어온 한 세기'를 담아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온 대가의 자전적 스케치는, 때로 수용소와도 같은 삶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우리에게 유의미한 삶의 지표가 되어줄 것이다.

_편집부 쥬

*이 글은 출판 격주간지《기획회의》327호(2012. 9. 5)에 실린 글을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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