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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이야기/편집자 분투기

어쩌다 SF 책을 편집하게 되어

책세상 2012. 10. 11. 14:24

“팔자에도 없던 SF 소설을 만들고 있답니다.”
요즘 무슨 책을 만들고 있느냐는 동료 편집자들의 질문에 한동안 내가 하고 다니던 대답이다. 그렇다. 내 영역이라고 경계를 지을 수 있는 범주에 SF문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은 저 유명한, 그렇게 재미있다는, 어슐러 K. 르귄 여사의 《어둠의 왼손》을 초반부를 못 넘겨 완독하지 못한 자칭 ‘SF맹’인 것이다. 그런데 내 손에 덜컥 쥐여진 원고가 SF 앤솔러지였다. 다른 장르도 아니고, 가장 코어한 팬덤이 형성되어 있다는 SF라니…… 그렇게 원고를 받아들고 10년차 편집자는 남몰래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이 책, 편집을 해나갈수록 은근한 재미가 있는 것이었다. 나의 으뜸가는 기획 원칙(!)이 “내가 읽고 싶은 책, 내가 알고 싶은 책은 ‘내 손으로’ 만든다”인데, 이 책은 거꾸로 미지의 세계로 나를 자꾸만 이끌고 갔다. 그리고 그 세계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했다.


《메타트로폴리스》 안에는 새로우면서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앞으로 어떤 곳으로 변해갈까? 기대보다는 우려, 낙관보다는 절망이 섞인 전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이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비관적인 사람일까. 이 책은 21세기 도시에서 살고 있는 도시생활자라면 누구나 막연하게 느끼는 불안에 대한 답변과도 같은 책이다. 요즘 제일 잘나간다는 SF작가 존 스칼지와 그가 꼽은 최고의 작가 4인방이 그린 미래의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메타트로폴리스’는 ‘너머’를 뜻하는 meta와 ‘대도시’를 의미하는 metropolis의 조합어이다. 그러니까, ‘저 너머의 도시’, 우리의 상상 너머 혹은 현재라는 시간 너머에 존재하는 도시인 것이다. 독특하게도 존 스칼지와 네 명의 작가들은 ‘미래 도시’라는 주제만 정한 채 각각 집필을 하지 않고, 틈만 나면 모여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의 규칙을 창조하고, 각각 어떤 이야기를 쓸지 의견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 결과 다섯 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그러나 유기적으로 연결된 다섯 편의 이야기를 내놓게 되었다.

그들이 창조한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루는 거의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 곳이다. 규모의 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중앙집권적 정부, 아름다운 자연, 내연기관 중심의 교통수단, 국가가 관리하는 공공치안, 도심을 중심으로 발달한 대규모의 도시들…… ‘메타트로폴리스’의 세계는 우리 인간이 이것들 없이 도시라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이 영 상상할 수 없는 모양새의 삶은 아니다. 그리고 그 실패로부터 태어나는 대안이라는 것이 매력이 없지 않은 삶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런고로, 조금 과장을 보태 말한다면, 《메타트로폴리스》는 점점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듯한 21세기 도시에 거주하는 우리가 읽어두면 좋을 미래생활 가이드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약장수가 약 파는 것 말고 무엇을 하겠냐마는, 그래도 아무거나 권하지는 않으니 한번 읽어보시기를.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지난 19일 대권 출사표를 던지면서 인용한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는 캐나다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이었다. 그가 말하는 ‘미래’는 공상 속의 막연한 어떤 지점이 아닌, 가장 근접한 현실의 어느 곳이라는 점에서 체험적 리얼리티로 읽히기도 했다. 미래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미래에 살게 될 우리의 ‘도시’는 또 어떻게 전개되고 묘사될까.
‘노인의 전쟁’으로 이미 SF계에서 이름을 알린 존 스칼지와 젊은 작가 네 명이 ‘미래 도시’라는 주제를 옴니버스식(5개 작품)으로 엮은 이 책은 찬란한 미래의 희망을 꿈꾸듯 얘기하거나, 디지털 시대의 폐허가 남긴 허망하고 초라한 앞날을 어둡게 그리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의 연장선상으로 나타날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설득적인 논리로 안내한다.
5개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미래 도시는 ‘지금, 여기’에서 출발하는 모든 가능성으로 건설된 도시다.
책이 주목하는 부분은 달라진 미래 도시의 생태가 아니다. 때론 과거의 답습으로, 때론 현실의 변주로 태어나는 미래 도시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 고유의 ‘감정’과 ‘관계’에 대한 통찰이 핵심이다.
그곳엔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타인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하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진다. 미래에서도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가치는 여전히 생명력을 얻고 있는 듯하다.

_편집2팀장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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