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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 나의 피로 쓴 글

책세상 2012.11.16 18:05
공허한 말들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우리의 삶이야말로 비극이리라

활자유랑자 금정연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빅토르 E. 프랑클은 생의 말년, 질병으로 눈이 먼 상황에서 완성한 회상록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의 어머니는 오래전에 프라하에 정착한 명문 가문에서 태어났다. 프라하에 살았던 독일 작가 비너Oskar Wiener가 어머니의 삼촌인데, 마이링크Gustav Meyrink는 자신의 소설 <골렘>에서 비너를 불멸의 인물로 형상화했다. (11쪽)

자신의 회상록을 어머니의 출생으로 시작하며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프랑클 박사는, 마이링크의 소설 <골렘>을 언급함으로써 문학에 대한 조예를 은근히 뽐내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회상록의 세 번째 문장을 프랑클은 이렇게 쓴다.

나는 오래전에 실명한 그 당숙 어른이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갑작스럽게 끼어든 비극 : 실명, 수용소, 죽음. 프랑클 자신이 그것을 목격했다고 밝힘으로써 비극은 완성된다. 수용소, 그는 그곳에 있었다. 눈이 먼 당숙 어른이 죽어가던 바로 그 순간에.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갈 뿐이다. 12세기 유대 성경과 탈무드의 해설자였던 라쉬Raschi의 후손이며, 프라하의 ‘고귀한 랍비 뢰브’ 마하랄Maharal의 후손이기도 한 그의 어머니에 대하여. 프랑클은 그런 사실을 예전에 족보를 살펴보다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구스타프 클림트, <철학><의학>(빈 대학 벽화)

나는 그 문장을, 그 문장을 감싸고 있는 문단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의 태도, 마치 정육점 주인이 고기를 다루듯 무심히 비극을 다루는 그의 태도는 나를 놀라게 했다. 이유가 무얼까. 나는 이미 그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전 나는 강제수용소의 체험을 담은 그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었고,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리포트를 쓰기도 했다(내 기억은 종종 틀린다). 다른 많은 독자들처럼 나 역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다음 날 아침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많은 것들이 잊혀진다. 그것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어쩌면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질문 — 평생 잊히지 않을 끔찍한 경험을 한 사람은, 어떻게 그 기억과 함께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말하자면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는 그 대답이다. 나치에 의해 강제수용소에 끌려간 그는 평생 잊히지 않을 끔찍한 경험을 했고, 그 기억과 함께 남은 생을 살았다. 물론 그것은 그의 삶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몫의 삶을 산다. 날마다 스타벅스의 메뉴판만큼이나 다양한 문제들을 마주하며, 때론 고심하고 때론 아무 생각 없이 나름의 답을 내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대형서점의 평대를 가득 채운 책들을 보라. 아니, 스마트폰이면 충분하다.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블로그와 각종 게시판과 댓글을 통해 자신을 주장하는 문장들, 그 뒤의 삶들, 더는 보고 싶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들여다보게 되는 모든 것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삶과 많은 답이 있는데, 게다가 우리는 강제수용소에 끌려갈 일도 없는데, 이미 세상을 떠난 어느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노년의 빅토르 프랑클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 (188쪽)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샌 퀜틴 형무소의 한 수인이 그의 책을 읽고 쓴 독후감의 한 구절을 빌려, “프랑클은 자신의 삶을 글로 쓰는 사람이며, 그 글처럼 사는 사람”이었다고. 프랑클 자신의 말을 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다른 이의 책을 위해 쓴 헌사에서 프랑클은 이렇게 말했다. “피로 글을 쓰는 것은 쉽다. 그렇지만 내 피로 글을 쓰는 건 쉽지 않다.” 그는 그 자신의 피로 글을 쓴 사람이다. 만인의 멘토를 자처하며 그럴듯한 말 부스러기를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무슨 일이든 극복해라. 오물을 뒤집어써도 즐거워해라.”(37쪽)
이것은 프랑클의 문장이 아니다. 어느 화장실에서 그가 본 낙서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내뱉을 수 있는 문장이다. 요즘은 오물을 뒤집어쓴 적도, 그런 상황에서 즐거워한 적도 없는 사람들이 다른 이를 위로한답시고(실은 가르친답시고) 남의 피로 써대는 문장이고, 그렇게 닳고 닳아 의미가 사라진 문장이다. 하지만 프랑클은 웃지 않는다. 그가 그 낙서를 본 장소는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의 화장실이었다. 그건 그런 문장이 아니었다. 충분하다는 건 바로 그런 뜻이다.

그건 결국 책임의 문제다. 스스로 내뱉은 말의 무게를 책임지지 않을 때 말은 공허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아니 나는, 그런 공허한 말놀이에 이제 진저리가 난다.

나는 자살하는 사람의 결심을 존중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한 생명이라도 살리고 싶은 내 원칙도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을 나 스스로 배신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동반 자살을 기도한 노부부가 우리 병원으로 실려 왔을 때였다. 아내는 죽고 남편은 사경을 헤맸다. 나는 남자를 살려야 할지 갈등을 하다가 결국 애써 살리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자가 목숨을 구하게 되면 홀로 아내의 무덤에 가야 할 텐데, 내가 그 책임을 질 수 있을지 갈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와 비슷한 경우는 또 있다. 치료가 불가능하여 오래 살 수 없으면서, 갈수록 고통이 심해지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런 고통 속에도 자기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런 원칙적인 가능성은 극도로 신중하게 보여줄 수 있고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런 한계 속에서 자아실현의 영웅주의는 단 한 사람에게만, 즉 자기 자신에게만 요구해야 한다. 그와 같은 문제적인 상황은 ‘나치한테 고개를 숙이느니 차라리 강제수용소에 가는 게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한테도 적용될 수 있다. 그 주장은 일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안전한 외국에서 체류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직접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이 다 끝난 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판결을 내리기는 쉬운 법이다. (118~119쪽)

그러니 나는 이 자리에서 그의 삶을 요약하지 않을 것이다.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라는 한 권의 짧은 책을 통해 프랑클 자신이 이미 끝낸 일이다. 그 책에 대한 나름의 평을 늘어놓을 생각 또한 없다. “일이 다 끝난 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판결을 내리기는 쉬운 법”이니까. 적어도 오늘은 아니다. 역사의 오물을 뒤집어쓴 채, 부모와 어린 부인과 당숙과 수많은 친지들과 그보다 많은 낯선 이들의 죽음을 목도하면서도 끝내 살아남아 로고테라피라는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킨 인물을 두고 이런저런 군소리를 할 만한 배짱이 내게는 없다.

나는 다만 이렇게 말할 생각이다. 비극 — 우리가 보기에 그것은 프랑클의 삶이었지만, 프랑클에게 삶은 비극이 아니었다고. 어쩌면 스스로 내뱉은 공허한 말들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우리의 삶이야말로 비극인지도 모르겠다고. 만약 그렇다면, 프랑클 박사의 처방은 약간의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희망과 의미만큼 공허한 말은 달리 없다고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더더욱.

나는 이미 1929년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갖게 하는 세 가지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 구상했다. 그 세 가지 가능성은 바로 우리가 하는 행동, 우리가 하는 일, 그리고 경험, 만남,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설령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운명(우리는 이것을 불치병이나, 수술이 불가능한 악성종양이라고 말한다)과 대결한다고 해도, 우리는 인간의 능력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능력, 즉 인간의 고통을 인간의 업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증언하면서 삶의 의미를 쟁취할 수 있다. (92~93쪽)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회상록의 마지막을 프랑클은 이렇게 썼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나는 프랑클이 말한 의미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프랑클 부부 (173쪽)
우리 딸의 이름은 가브리엘레이고, 사위는 프란츠 베젤리이다(그는 빈 대학 물리학과 교수이다). 그리고 손주는 카타리나와 알렉산더이다. (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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