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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가 쓴 '유럽의 교육',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모든 것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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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가 쓴 '유럽의 교육',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모든 것

책세상 2013.03.04 10:33


활자유랑자 금정연 


로맹 가리

1.

너무나 많은 로맹 가리가 있다. 유대계 슬라브 혈통의 이민자 소년 로맹 카체브, 기꺼이 자신의 삶을 희생한 홀어머니의 하나뿐인 아들 로만, 자유 프랑스의 영웅이자 샤를 드골 장군으로부터 무공훈장을 수여받은 공군 중위 가리 드 카체브, 전쟁 기간에 써내려간 데뷔작으로 비평가 상을 수상한 전후戰後 프랑스의 대표작가 로맹 가리, 미디어가 사랑한 외교관이자 드골주의자, 영화배우 진 세버그의 바람둥이 연인, 두 편의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 그리고 또 한 명의 작가 에밀 아자르에 이르는 수많은 정체성과 그를 둘러싼 이야기, 차라리 전설. 그러니 로맹 가리에 대해서라면 두툼한 전기를 쓰거나, 아무것도 쓰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도미니크 보나의 《로맹 가리》나 폴 세르주 카콩의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가쁜 사랑》처럼. 혹은 그에 대해 쓰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들은 얼마나 운 좋은 사람들인가? 하지만 행운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적어도 오늘은. 나는 이 짧은 글을 통해 그의 데뷔작인 《유럽의 교육》를 요약할 것이고, 하얀 종이가 너무 작아 아빠 얼굴을 그리며 잠이 들었다는 어느 동요의 주인공처럼, 안타까운 마음으로 잠을 청할 것이다. 사실, 밤은 이미 늦었다.

 

2.

《유럽의 교육》은 1942년 겨울을 무대로, 폴란드 레지스탕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독일 점령군을 피해 빌노를 에워싼 드넓은 숲으로 도피한 빨치산들은 땅을 파서 만든 은신처에서 두더지처럼 생활한다. 리투아니아의 겨울이 쳐놓은 덫에 걸려 완전히 고립된 그들은 이따금 은신처에서 나와 적군 수송 행렬을 기습한다. 하지만 그들을 괴롭히는 가장 무서운 적은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절망이다. 자살의 유혹과 광기를 이겨내게 하는 유일한 희망은 스탈린그라드다. 그들은 러시아 군대가 그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목숨 자체가 붉은 군대의 항전에 걸려 있다. 모든 폴란드 빨치산들은 숲에서 나가 러시아 군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점령군에 대항해 싸울 순간만을 기다린다.《로맹 가리》, 98쪽


이야기의 주인공은 야네크라는 이름의 어린아이다. 독일군에게 형과 부모를 잃은 소년은 숲속을 헤매다 빨치산을 만나 그들 무리에 합류한다. 그곳에서 소년은 “폴란드 기병대의 사각모를 눌러쓴, 사랑의 열정을 품은 빨치산 대장 야블론스키, 시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과묵하고 무뚝뚝한 농부 체르프,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우크라이나의 구두 수선공 크릴렌코, 딸들이 독일군들에게 능욕당하자 빨치산이 되어 끔찍한 전리품—독일 병사들의 잘린 성기(번역본에서는 ‘여남은 명의 팔다리’)—을 수집하는 빌노의 이발사 스탄치크, 금요일 저녁마다 숲의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폐허로 기도를 하러 가는 유대인 정육점 주인 얀켈 쿠키에르, 또는 어린애나 다름없는 젊디젊은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영웅 놀이를 하는 육십대 변호사 ‘선생님’. 그리고 밤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책을 읽어주는, 하나가 된 평화로운 유럽을 맹목적으로 믿고자 하는 소설가 도브란스키”(《로맹 가리》, 99쪽) 등의 다양한 인물들을 만난다. 조시아라는 이름의 소녀도 빼놓을 순 없다. “고결한 마음씨를 가진 첩자이자 너그럽고 사랑스러운 어린 창녀이고, 반은 성모, 반은 집시인” 소녀를 로맹 가리는 이렇게 묘사한다.


주근깨 가득한 마르고 창백한 얼굴의 소녀는 볼에 분을 덕지덕지 바르고 입술을 너무 붉게 칠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예뻤다. 수하르키에서는 본 적이 없는 소녀였다. 그녀는 군인들이 빌노에서 자신을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군인들이 빌노에서 자신을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부모는 돌아가셨고,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그녀는 일 년 전부터 ‘군인들을 따라다녔다’. 그녀는 베레모를 쓰고, 체구에 비해 너무 큰 군인 외투를 입고 있었다. 고무줄로 붙잡아 매놓은 검은 털양말은 계속 미끄러져 발목까지 기어내려오곤 했다. 그러면 그녀는, 아이들이 하듯이 몸은 구부리지 않고 다리만 한 쪽씩 들어 올려 손으로 양말을 끌어당겼다. (《유럽의 교육》, 21쪽)


소년은 이내 사랑에 빠진다. 소녀도 그를 사랑한다. 그리하여 소설은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가 된다. 전쟁과 사랑, 그것이 바로 소년이 받는 ‘유럽의 교육’이다. 로맹 가리는 마치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 가정교사처럼, 소년의 교육을 위해 다양한 삽화를 준비한다. 도브란스키가 열정적으로 설파하는 희망의 이야기도 과목 중의 하나다. “독일은 왜 우리한테 그런 짓을 하는 걸까요?”라고 묻는 소년에게 도브란스키는 이렇게 답한다.


“절망 때문이지. 좀 아까 페흐가 하는 말 들었지? 사람들은 서로 멋진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이어 그 이야기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그들은 그것으로써 신화가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페흐 역시 절망에 빠지려 하고 있어. 독일 사람들만 절망하는 게 아니야. 절망은 어디에나 떠돌고 있어. 옛날부터,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절망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절망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면 인간은 곧장 독일인이 되는 거야. 그 사람이 폴란드의 애국지사라 해도 말이야. 문제는 그 사람이 독일인인지 아닌지를, 그에게 그런 일이 단지 어쩌다가 한 번씩 일어나는 것에 불과한지 아닌지를 아는 거란다. 내가 책에서 하려는 얘기가 바로 그런 거지. 제목 안 물어보니?”

“말해주세요.”

“‘유럽의 교육’이야. 타데크 흐무라가 권한 제목이지. 틀림없이 빈정거리는 뜻에서 한 말이었겠지만…… 그에게 유럽의 교육이란 폭탄, 학살, 포로 총살, 짐승처럼 구덩이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 뭐 그런 거지. 하지만 나는, 나는 도전에 응하겠어. 자유, 존엄성, 인간으로서의 명예, 그 모두가 결국은 사람들로 하여금 목숨을 내놓도록 만드는 한 편의 동화일 뿐이라고 얼마든지 말해도 좋아.” (87~88쪽, 강조는 편집자)


물론 그것은 그의 생각일 뿐이다. 도브란스키가 언급하듯 타데크 흐무라의 생각은, 야네크의 생각은, 그리고 물론 로맹 가리의 생각은 다르다. 그리하여 소설은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하나의 플롯—마침내 찾아온 해방의 서사 혹은 덧없는 죽음의 서사—를 향해 달려가는 대신, 전쟁의 풍경과 그것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는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된다.


“그래, 나도 알아.” 타데크 흐무라가 상냥하게 말했다. “그것을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란 매우 어렵지, 안 그래? 유럽은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 대학, 가장 아름다운 대학들을 갖고 있었지. 바로 그곳에서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이념들, 우리의 가장 훌륭한 업적들에 영감을 준 이념들, 즉 자유나 인간의 존엄성이나 형제애 같은 개념들이 태어났어. 유럽의 대학들은 문명의 요람이었어. 하지만 또다른 종류의 유럽의 교육도 있단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받고 있는 교육이지. 총살 집행반, 구속, 고문, 강간,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 암흑의 시절이지.” (104~105쪽)


우리의 학생 야네크가 제일 처음 배우는 것은 다름 아닌 증오다.


“나는 증오를 알고 있어. 독일이 나한테 증오를 가르쳐주었어. 부모님을 잃으면서, 추위와 배고픔을 겪으면서, 땅 밑에서 살면서, 그리고 만약 길에서 독일군이 나와 마주치더라도 나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거나 나를 불 옆에 앉게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들이 나를 보며 오직 피부 속에 총알을 쑤셔박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증오를 배웠어.” (139~140쪽)


그렇지만 야네크는 증오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통제할 수 없는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는다. 그는 음악을 사랑했고, 음악을 사랑하는 한 그는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 그는 조시아에게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언젠가 야블론스키의 편지를 전달했던 여인의 집을 향하고, 점령군에게 처형된 그녀를 대신해 집을 차지한 독일 장교에게 권총을 겨눈다. 야네크는 그에게 연주할 것을 명령하고, 늙고 선한 장교는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준다. 기묘한 음악시간. 그리고 그들은 친구가 된다. 


야네크는 또한 무너진 공장에 숨어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의 무리에서 노예처럼 부림당하던 ‘분더킨트’를 구하기도 한다. 그가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는 소년을 구하기 전에 먼저 연주를 청한다.


더러운 누더기를 걸친 아이, 유대인 거주 지역의 학살로 부모를 잃은 유대인 아이가 악취 풍기는 지하실 한가운데 서서 세계와 인간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신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그는 연주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더이상 흉하지 않았고, 그의 어설픈 몸은 더이상 우스꽝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자그마한 손에서 활은 요술 막대기가 되었다. 승리자처럼 의기양양하게 머리를 뒤로 젖히고, 승리의 미소로 반쯤 입을 벌린 채 그는 연주하고 있었다. 세계가 혼돈으로부터 빠져나왔다. 세계가 조화롭고 순수한 모습을 띠어갔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증오가 사라졌고, 처음 몇 곡에 굶주림과 경멸과 추악함이 달아나버렸다. (206쪽)


하지만 그들은 이내 목숨을 잃는다. 늙은 장교는 트럭을 습격한 빨치산들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다. 분더킨트는 숲속의 겨울을 이기지 못한 채 손가락이 굳어가는 공포 속에서 눈을 감는다. 품속에 바이올린을 꼭 껴안고서. 야네크는 살아남아 그들의 죽음을 지켜본다. 그 또한 교육의 일부인 것이다. 


조시아에게도 시련이 찾아온다. 몸을 팔아 정보를 사는 일을 그만둔 그녀에게 조직이 ‘마지막’ 활동을 요청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고통을 겪는 데 ‘마지막’은 없었다. 그리고 희망은, 새로운 고통을 견뎌내도록 인간을 격려하기 위한 신의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 그녀는 자문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사랑하고 먹고 따뜻하게 지내는 것뿐인데, 평화롭게 사랑하는 것, 굶어 죽지 않는 것, 얼어 죽지 않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지구는 둥글며 자전한다든가, 맞춤법이 어떻게 된다든가 하는 것 등 제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을 다 깨우치는 것보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225쪽)


끊임없는 전쟁, 민간인들의 시체로 뒤덮인 유럽의 모습

그러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목숨을 잃는다. 식량보다 죽음이 더 흔한 시절이다. 거듭되는 교육 속에서 야네크는 생각한다. 인간 세상이란 어떤 거대한 자루에 불과하다고. 눈이 먼 채 꿈만 꾸는 감자들이, 자루 속에서 무정형의 덩어리를 이루며 발버둥치고 있다고. 그것이 바로 인간성이라고. “더이상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고통의 목소리로, 올된 교육과 그를 성숙시킨 어떤 인간적 경험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래서 환상이 제거된 목소리로” 야네크는 말한다.


“나 화 안 났어, 조시아. 하지만 나는 결국 배우게 되었어.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어. 그들은 우리를 훌륭한 학교에 보냈고, 나는 언제나 훌륭한 학생이었어. 우리는 유명한 교육을 받은 거야. 타데크 흐무라 기억하지? 그는 그것을 우리의 ‘유럽의 교육’이라고 불렀어.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어. 내가 너무 어렸거든. 그는 자신이 곧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아무 데서나 빈정거리고 다녔어. 하지만 나는 이제 알아. 그가 옳았어. 그가 그토록 비꼬아 말했던 이 유럽의 교육이라는 것은 바로, 그들이 너희 아버지를 쏠 때, 또는 너 자신이 뭔가 대단한 명문을 내세워 누군가를 죽일 때, 또는 네가 죽도록 굶주리고 있을 때, 또는 네가 마을을 파괴하고 있을 때 이루어지는 거야. 우리는 훌륭한 학교에 있었어. 우리는 정말 교육되었어.” (320쪽)


조시아가 쓸쓸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는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어째서 그런 말을 하냐고 묻는 야네크에게 그녀는 말한다. “왜냐하면 너는 불행하니까.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는 그 무엇도 너를 불행하게 하지 못해. 알겠지, 나도 대단한 걸 배웠어.” 열다섯의 나이에 그들은 적지 않은 것들을 배운 셈이다.


그리고 시험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을 새롭게 돌아보게 하는 마지막 기말 시험. 야네크는 그것을 치러낸다. 마침내 유럽의 교육을 이수한 야네크. 그는 아직도 자신을 어린애라고 생각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순진한 도브란스키를 향한 거의 아버지와도 같은 보호본능을 느끼며 자신이 배운 것을 곱씹는다.


기나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얼마나 많은 꾀꼬리가 어둠 속에서 그렇게 노래를 불렀을까? 야네크를 생각했다. 믿음을 품고 영감을 받은 인간 꾀꼬리들이 이 영원하고 경이로운 노래들을 부르며 얼마나 많이 죽어갔을까? 매혹적인 목소리에 담긴 약속이 실현되기도 전에, 추위와 고통과 경멸과 증오와 고독 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인간 꾀꼬리들이 죽어가게 될까? 또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탄생이, 얼마나 많은 죽음이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기도와 꿈이, 얼마나 많은 꾀꼬리가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눈물과 노래가, 얼마나 많은 어둠의 노래가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꾀꼬리가 필요할까? (330쪽)


3.

물론 유럽의 교육을 이수한 건 야네크만이 아니었다. 그건 차라리 로맹 가리, 그 자신이었다. 전투에 참여하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계속해서 엇갈리는 상황 탓에 막사에 틀어박혀 승리를 꿈꿀 수밖에 없던 현실의 로맹 가리는, 유년의 기억을 차지하고 있는 폴란드의 숲으로 돌아가 가상의 전투를 치렀고,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켰다.

마치 “사람들은 서로 멋진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이어 그 이야기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그들은 그것으로써 신화가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라던 도브란스키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현실과의 구분이 모호한, 목숨을 건 위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하여 그는 전쟁에서 돌아온 영웅이자 평론가상을 수상한 신인 작가를 기다리던 기자들 앞에 검은 군복 상의를 입고 훈장을 단 채, 다시 말해 유럽의 학교에서 받은 학사모와 졸업장과 함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모두가 기다리던 새로운 전설의 시작을 알린다. 그가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변주하게 될 로맹 가리라는 이름의 전설을.


전설이 그의 피부에 달라붙어, 대중은 보다 어둡고 미묘한 진실을, 전 생애에 걸쳐 행동에 뛰어든 단 한 번뿐인 고질적인 몽상가이며 욕구 불만의 이상주의자인 가리의 비밀을 알지 못하게 된다. 우유부단하고 머뭇거리고 쉽게 상처 입는 그는 해방훈장 수훈자의 가면을 벗으면, 오히려 반反케셀 혹은 반헤밍웨이처럼 보일 터였다. 사실 그는 모험가보다는 시인에 가까웠다. 하지만 비평계는 무엇보다 당시 그가 자신에게 부여한 연극적 이미지, 세기의 폭풍 속에 온몸으로 뛰어든 작가들의 막내동생 이미지를 간직하게 된다. (《로맹 가리》 117쪽, 강조는 인용자)


4.

존경하는 이상빈 선생은 언젠가 로맹 가리의 작품 세계를 해설하며 이렇게 썼다.


그가 진정 위대했는지 아직 말할 수 없다. 앙드레 말로를 비롯한 위대한 작가들에 대한 모방이 그의 작품 도처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아직도 그에게서 의혹의 시선을 거둘 수 없고, 그를 제대로 자리매김 하려면 시간이 좀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진지하게 싸웠다는 사실이고, 그렇기에 그의 모습이 회한 혹은 연민과 더불어 우리 존재를 뒤흔들어놓고야 만다는 사실이다. (‘로맹 가리, 서정적 광대의 초상’)


나 역시 그가 진정 위대한 소설가였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나는 단지 이렇게 말할 생각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위대함을 연기한 배우였고, 그의 연기는 실로 위대했다고.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였고, 그는 그 사실을 의식하지 않은 채 그것을 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위대함은 더이상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결말을 짓는 일뿐이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향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모든 위대한 예술가가 그랬던 것처럼 작품을 끝내야 할 순간을 알았고, 그렇게 했다. 


그렇다면 왜? 해답은 아마 내 자전적 작품의 제목인 ‘밤은 고요하리라’와, 내 마지막 소설의 마지막 구절인 ‘더 잘 말할 수 없기 때문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완전히 표현했다. (유서 중에서, 《로맹 가리》 427쪽, 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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