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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바꾼 순간의 중심, 책과 독서의 역사는 계속된다 본문

책세상 이야기/편집자 분투기

인류의 역사를 바꾼 순간의 중심, 책과 독서의 역사는 계속된다

책세상 2013.04.26 11:10
‘담배의회’와 ‘기획회의’
―책과 독서의 역사는 계속된다


책과 독서의 문화사
―활자 인간의 탄생과 근대의 재발견

육영수 지음

구텐베르크가 없었다면 종교개혁, 과학혁명, 프랑스 혁명이 있었을까? 개인의 운명과 인류의 역사를 바꾼 결정적 순간의 중심에는 대개 책이 있다. 책의 저술-인쇄-출판-보급-수용에 관한 연구이자 책과 인간, 독서와 사회의 관계를 탐구한다.


* * *
 
“구텐베르크의 은하계는 멀어져가도 책-읽기의 우주에는 종착역이 없다”

19세기 후반, 영국 맥밀런 출판사에서는 매주 목요일 밤 ‘담배의회’가 열렸다. 담배 연기 자욱한 사무실에서 스펜서, 킹즐리, 헉슬리 같은 당대 지성들이 홍차와 술을 마시며 토론과 논쟁으로 밤을 새웠다. 이 모임을 만든 이는 맥밀런 출판사 창업자인 알렉산더 맥밀런이다. 폭넓은 지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맥밀런을 명문 아카데미 출판사로 성장시킨 알렉산더는 이후 옥스퍼드·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가 교육 전문 출판사로 거듭나는 데도 힘을 보탰다. 이때 그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책임 편집자가 통제하고 출판사가 후원해 공동 집필로 여러 권의 역사서를 만드는” 방식을 구현했는데, 공동 저자들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보편적으로 서술하는 편집 방향은 궁극적으로 ‘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이라는 개념의 수립에 기여했다.

 
활자 설계, 활자 대량 생산 기술을 유럽에 전파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이 책의 5장 〈영국 빅토리아 시대 출판인의 작은 역사〉에 등장하는 사례이다. 당대의 가장 첨예한 지적교류의
장을 기획하고, 시대 담론의 공동 생산자이자 보급자로 활약한 출판인의 궤적.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 대한 전
문 역사가의 탐색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을 만드는 과정은 특별했다. “저자의 영혼을 착취해 독자들에게 팔
아먹는 뚜쟁이”(에스카르피) 취급을 받던 출판인이 어떻게 당대 지식 지형의 설계자로 설 수 있었는지, 현대적
의미의 ‘출판인’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출현하고 성장했는지를 추적하는 5장은 편집자로서 흥분되는 내용일 뿐만
아니라 출판인의 사회문화적 중요성을 재평가함으로써 온전한 ‘책의 역사’ 서술에 다가간다는 점에서 학문적으
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다. 
“지식 공화국의 성장을 위해 혁신적 비전을 실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저자
가 토해낸 콘텐츠를 매만져 독자에게 제공해온 출판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수
많은 창작물
사생아가 되었을 것”
이라는 저자의 이야기를, 정당한 평가이자 온전히 실현해야 할 과제로 가슴에 새겨둔다.
  
 
편집자로서 ‘출판인의 역사’에 먼저 눈이 갔지만, 이 책이 다루는 영역은 더 크고 넓다. ‘책과 독서의 역사’라는 새로운 역사학의 기원과 발전 과정 및 주요 이슈를 사학사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다룬 저작으로, 책․독서․출판이 근대 서양의 시대정신과 정치적․사회적 변화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다. 책을 읽는 동안, ‘책과 독서는 역사를 움직이는가’에서 시작한 질문은 ‘책의 종말이 선언되는 디지털 시대에 책과 인간, 독서와 사회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주되고 증폭된다. 그리고 “개인과 인류 역사의 결정적 순간에 책이 있었”으며, “구텐베르크의 은하계는 빛을 잃어도 책과 독서의 우주에는 종착역이 없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또 하나, 한국 근현대 출판사 서술을 위해 출판업 종사자들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라는 저자의 제안을 떠올리니, 내가 쓰는 편집일지와 기획안, 내가 읽는 《기획회의》 한 장의 무게가 예사롭지 않다.

_편집장

*《기획회의》 284호에 실렸던 글을, ‘책의 날’ 무렵에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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