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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 기형도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主語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 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1. 아아, 가을입니다. 단풍은 언제쯤 들까요? 은행은 벌써 떨어지고 있던데, 나무보다 제가 먼저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비가 오길래 곧 쌀쌀해지겠구나 싶었는데. 아침에 매달리는 이불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나오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계절입니다. 붕어빵, 호빵, 군밤. 올해도 곧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아, 어제는 붕어빵과 재회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2. 얼마 전에는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였..
Autumn Rain 우가 울에게 _ 김혜순 11월에는 잠이 오지 않았고 11월에는 천장의 별이 모두 켜졌고 11월에는 가슴이 환해 눈을 감을 수 없었고 찬 우물이 머리보다 높아 위태로웠고 우와 울은 주먹 쥐고 푸른 바케쓰 속에 누워 있었네 충치 앓는 피아노처럼 둘이 앙다물고 있었네 우는 구름을 덮고, 울은 그림자를 덮었네 우는 바람에 시달리고, 울은 바다에 매달렸네 우는 살냄새다 하고, 울은 물냄새다 했네 우는 햇빛을 싫어하고, 울은 발이 찼네 우는 먹지 않고, 울은 마시지 않았네 밥을 먹는데도 내가 없고, 물을 마시는데도 내가 없었네 우는 산산이고, 울은 조각이고 우는 풍비이고, 울은 박산이고 내 살갗은 겨우 맞춰놓은 직소퍼즐처럼 금이 갔네 우는 옛날에 하고, 울은 간날에 울었네 우는 비누를 먹고, ..
近世書画, 夜色楼台図(요사 부손, 밤경치누각도) 月天心貧しき町を通りける つきてんしんに まずしきまちを とおりける 츠키텐신니 마즈시키마치오 토오리케루 달이 밝은 밤 가난한 마을을 지나갔노라 달이 중천에 떠 있을 무렵, 도시의 변두리를 지나갔다. 어느 집이나 작다. 이미 문을 닫은 곳도 있고, 문을 열어놓고 달을 보고 있는 집도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달밤이라서 이 가난한 마을의 모습이 부손에게는 언제까지고 마음에 남아 있었을지 모른다. ㅡ요사 부손 지음, 오석륜 옮김, 중에서 :: 요사 부손(近世書画, 1716~1783)은 에도 시대의 하이쿠 시인이자 화가. 1726년 오사카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나 20세에 그림과 하이쿠를 배우기 위해 에도로 갔다. 1742년 스승인 하야노 소아(早野宗阿)가 세상을 뜬 ..